[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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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개에 앞서 질문 하나, '학교생활소설부'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혹자들은 웬 '학교생활소설부'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학생들이 '학교생활기록부'를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이 말이 함의하듯 학교생활기록부는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 공정성과 객관성 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숙명여고의 시험지 유출사고도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통해 수시전형에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런 사건이 숙명여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년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얼마 전 광주에서도 발생했고 부산에서도 발생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아니 앞으로도 발생할 개연성은 매우 높다.

#'학교생활소설부'가 되어가는 현실

생활기록부 중심의 수시전형이 확대된 것은 공교육 정상화를 통해 입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학교 내에서의 내신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입시 컨설팅 학원은 더욱 활성화 되었다. 내신은 단위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평가로 지역 간, 학교 간 수평적인 비교를 할 수없는 치명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내신 성적은 좋은데도 전국단위 평가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생활기록부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이에 대한 공정성 문제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생활기록부가 아닌 생활소설부가 되어간다는 지적 그대로다. 여기에 수행평가 영역도 한 몫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쿤스의 '풍선개'를 맥락주의적 관점을 적용하여 팝아트 작품의 가치와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예컨대 이런 예시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사가 모든 학생들을 이런 식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세부능력을 평가하기에는 학생수가 너무 많다는 식의 진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예시와 같은 질적 평가는 교과에 대한 상당한 지식 없이는 어렵다.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공정과는 거리가 먼 주관성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뿐인가. 불편한 이야기지만 세부능력과 특기사항에 대한 대입 반영비중은 높아지는데 학생들이 만족할 만한 내용을 정확히 기록해주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써온 자기평가를 생활기록부에 그대로 옮겨주는 경우도 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문대 진학율을 높이기 위해 특정 학생들에게 몰아주기 식의 업적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학생들의 입에서 학교생활소설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와 교사, 금수저 학부모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인식이다.

이번 내신조작 시도는 우리사회의 입시정의와 공정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지금도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부모들의 피켓 문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믿을 수없는 수시보다 가장 공정한 정시"를 확대하라는 내용이다. 현재 수시전형 비중은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 입시정원의 70%이상이 아이들이 말하는 학교생활소설부에 기반하여 선발한다.

#입시공정성 확보 시급한 문제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말끝마다 공정사회를 외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반대다. 취업불공정, 입시불공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취업을 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정규직이 되는 사회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일자리가 대물림되기도 한다. 입시에서도 그렇다. 학생들의 입에서 '학교생활소설부'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공정은 정의사회로 가는 첫걸음이자 마지막 종착역이다. 지금의 입시는 불공정의 다른 이름이 된지 오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공정사회를 말하지만 가장 공정해야 할 입시를 공정하게 담보해주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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