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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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8.12.0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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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충남외국어교육원 직원들이 연탄 나눔 행사를 하고 있다. / 충남외국어교육원
충남외국어교육원 직원들이 연탄 나눔 행사를 하고 있다. / 충남외국어교육원

[중부매일 메이리 박상준]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신혼시절 가장 힘든일은 연탄가는일이었다. 그는 2001년에 발표한 수필 '모두모두 새가 되었네'에서 "나의 시집살이는 연탄과 함께 시작되었다"며 "때에 맞춰 연탄을 가는 일은 새내기 주부에게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연탄가는 것을 깜빡잊고 잠이 들면 새벽엔 차갑게 식은 냉골 바닥에서 깨야 한다. 박완서 작가는 당시 방이 많이 시댁에서 하루에 연탄 13장씩을 갈아야 했다니 겨울이 오면 보통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없은 겨울은 상상도 못했다. 1920년대 일본의 노노자와 타츠고로가 개발한 원통형 연탄은 화력이 강하고 다루기 쉬워 구공탄이라는 별명으로 40여년간 단독주택의 난방과 음식 조리를 책임졌다. 지금은 연탄 구경을 못한 아이도 많지만 70년대엔 초등학교도 교실에서 연탄난로로 겨울을 났다. 중년들에겐 난로위에 도시락을 겹겹이 쌓아올린 유년시절의 교실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시골에선 주로 산에서 주워 온 장작을 땠지만 도시서민들은 겨우내 쓸 연탄을 창고에 쟁여두거나 형편이 어려운 집에선 저녁 찬거리로 두부나 야채를 사듯 그날 쓸 구공탄을 한두개씩 사기도 했다.

하지만 연탄은 결정적인 흠이 있다. 완전연소하지 않은 탄소는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되어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196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진전되고, 도시로 몰려드는 서민 인구가 급증하면서 연탄가스 중독사고도 비일비재했다. 눈비로 인해 기압이 떨어지고 바람이 잦아드는 날이면 기상캐스터는 연탄가스 중독을 조심하라고 예보했다.

1980년대 이후 서울은 물론 지방에도 아파트문화가 확산되면서 연탄은 입지가 좁아졌다. 단독주택에 살아도 기름값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편리하게 난방할 수 있는 기름 또는 가스보일러가 대세가 됐다. 그래서 지금은 도시주변에 연탄공장을 찾기가 쉽지않다. 그래도 연탄수요는 있다. 값비싼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는 엄두를 못 내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가구가 15만 세대에 달한다. 주로 빈곤층이나 영세노인 가정일것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정부가 연탄 판매가격을 최고 19.6% 인상하면서 에너지 빈곤층은 혹독한 겨울 추위에 내몰리게 됐다. 소비자 가격은 개당 800원인데 여기에 배달료를 포함하면 고지대달동네와 옥탑방, 농어촌산간벽지 등에서는 900원에 달한다. 가격 인상과 동시에 정부는 연료 금액을 지원해주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함께 실시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은 기초수급자들 뿐이다. 연탄을 쓰는 전체 가구의 절반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정부가 연탄 가격을 올린 것은 2020년까지 화석연료 보조금을 모두 폐지하기로 한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 합의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 축소로 가격이 뛰면 연탄 소비는 더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연탄의 시대가 저문것은 한참 됐지만 이제 연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날도 멀지 않았다.

안도현 시인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삶을 성찰했지만 연탄재를 본지도 한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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