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비바람에 맞서 달리는 버스는 성난 황소 같았다. 가끔 땅을 뒤집는 바람이 전장의 갑옷으로 무장된 우람한 몸체를 사시나무 털듯 흔들었지만 오직 가야 한다는 일념은 천재지변을 무시하고 거친 폭풍을 헤쳐 나갔다.

불행 중 다행일까. 남쪽 끝으로 내려 갈수록 태풍은 잠잠해졌고 햇빛 사이로 검은 구름들이 몰려다니기도 했다. 선차대회에 초대받은 행운을 태풍 나부랭이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해남 대흥사에서 유명 승려들의 본국의 선차 시연을 관람하고 초의선사의 흔적과 숨결을 다우들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우산을 들고 대흥사 일주문으로 향했다. 태풍의 영향인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의 물소리와 촉촉한 잎들은 남쪽의 푸른 기운을 온전하게 토해냈다. 저 멀리 물안개 오르듯 뿌옇게 피어나는 두륜산 아래 넓게 둘러앉은 절 풍광. 한 폭의 무릉도원이다. 이 초연한 곳에서 초의 선사는 동다송을 저술했다. 저 멀리 띠집으로 만든 일지암에서 단구(丹邱)자나 모선(毛仙)이 금방이라도 찻잎을 들고 나올 것 만 같다. 바람에 흔들리는 처마 끝의 목어도 옛일이 그리웠는지 목을 길게 내밀고 흥얼댄다.

"후황이 성서러운 나무를 귤의 덖과 짝지으시니 / 받은 천명 그대로 옮기지 않고 남쪽에서 자란다네 / 빽빽한 잎은 눈 속에서도 겨우내 푸르고 / 하얀 꽃은 서리에 씻겨 가을에 꽃 피우네"

법당에는 각국의 승려와 관람자들로 가득하다. 나라마다 다른 선차의 현묘함을 대흥사의 아름다운 대 경관 속에서 장엄하게 펼쳐낼 계획이었으리라. 묵향 가득한 주지스님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흘러내린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며 도립공원인 두륜산의 천년고찰이다. 더구나 지난 6월 '한국의 산지승원'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대흥사로서는 크게 경축할일이다. 선차의 다맥인 청허휴정, 월저도인, 설암추봉, 환성지안, 상월새봉, 함월해원, 연담유일, 초의의순, 아암혜장, 범해각안, 철선혜즙, 보제심여 등의 역대법승들께서도 후손들의 노고에 감응할 것이다.

그중, 한국 차의 중흥조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대흥사에 주석하며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조선후기의 한국선차를 다시 부흥의 길로 이끌었다. 초의선사의 지독한 차 사랑이 현대 문화의 품격이라 할 수 있는 茶문화의 단초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근 현대에 한국선차의 중흥지는 대흥사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신라 말, 당나라에 유학했던 구법승들로부터 시작해 1600년이 넘는 현재까지 차는 선수행의 도구로, 건강을 지키는 약용으로, 기호음료로, 불안정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차로써 방탕한 기운을 흩어내고, 차로써 졸음을 쫓아내고, 차로써 생기를 기르고, 차로써 병의 기운을 제거하고, 차로써 예절과 어진 마음을 더하고, 차로써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차로써 자양분을 맛보고, 차로써 몸을 기르고, 차로써 도를 행하고, 차로써 마음가짐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다선일여(茶禪一如)를 잘 나타내고 있는 적암종택의 '선다록'이다. 최첨단의 과학으로도 얻어낼 수 없는 현대인들의 명약이 아닌가. 어느 누가 차는 불가의 선 수행에 필요한 도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차 마시는 일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극약처방이다. 승속이 함께 즐기는 동쪽의 차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간다. 대흥사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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