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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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박상준 칼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가장 잘 이용하는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위터로 정치를 해서 아예 트럼프 스스로가 언론이 됐다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도 핫한 SNS 스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다. 후보 시절부터 SNS 잘 활용했던 문 대통령은 바쁜 일정속에서도 페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채널에 수시로 글을 올려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에도 뉴질랜드로 향하는 기내에서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 한다"고 적었다.

'정의'는 문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단어인 듯하다. 누구보다도 '정의'를 자주 언급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관통하는 키워드도 '정의'다 노 전 대통령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 실패한 역사"라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깎아내렸던 것은 두고두고 회자(膾炙)됐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 9월초 "특권·반칙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사회가 되고 말았고, 국가권력은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1년여 전 취임식때 역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정의의 가치를 유난스럽게 부각시켰다.

몇 년 전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국내에서 유독 인기를 끌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정의로운 나라'를 강조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소명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이후 한국은 정의사회로 나아가고 있을까. 아마 대다수 국민들은 '노'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그날그날 신문만 흩어 봐도 정의와 반대되는 세상이 우리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정의를 해석하는 의견은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교정적 정의, 분배적 정의, 절차적 정의다. 이를 조목조목 따져보면 우리가 얼마나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는 2012년 위장전입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선고당시 이미 세 차례 위장전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신과 똑같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형사 처벌했다. 현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4명도 위장전입했다. '교정적 정의'가 실종된 것이다. 정의의 여신상은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다. 저울은 법 집행의 형평성을 상징하고, 법전은 법전에 의한 법 적용을 상징한다. 청와대가 추천한 김 후보자가 대법관이 된다면 저울이 과연 공정하게 기울게 될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땅에 수많은 청년들을 좌절시킨 공공기관 고용세습은 어떤가. 지난 10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드러난 친·인척 채용사례는 13개 기관 345명에 달했다. 공공기관마다 고용세습은 아예 관행이 됐고 이를 모르고 공공기관 취업을 위해 올 인했던 취업준비생중 상당수가 둘러 리 선셈이 됐다. 고용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사라진 것이다. 실력이 있어도 '빽'없는 청년들은 공공기관 취업이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이 분배적 정의다. 양극화를 해소하기위한 방안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경제적 체질 개선으로 '함께 잘 살자'는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선한의도에 비해 부작용이 심한 것은 청와대가 의지만 있다면 개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배가 특정집단에 쏠려있다면 얘긴 다르다. 노조가 권력이 된 대기업·공공기관과 중소기업 임금격차는 매년 커지고 있다. 2017년 기준 한국에서 500명 이상 대기업 직원 월 평균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48.3%에 불과했다. 강성노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분배적 정의는 기대할 수 없다.

정의란 '공정함'을 말한다. 하지만 권력층, 법관, 강성노조가 사익을 추구하며 법위에 서있는 세상에서 '정의'는 설자리가 없다. 원래 '정의'는 전두환 정권이 선점한 용어다. 당시 구호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그래서 용어의 격만 떨어트렸다.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는한 파탄난 경제를 살리지 못하듯 특권층을 비호한다면 '정의로운 나라' 는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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