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충북다양성보존협회

제비꽃. / 클립아트코리아
제비꽃. / 클립아트코리아

12월이 되어서 북극 한파가 매섭게 찾아왔습니다. 예전에는 서서히 추워지며 겨울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갑자기 달려드는 한파로 겨울을 알게 됩니다. 점점 더해가는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들의 살아가기는 힘들어져 갑니다. 앞으로 암울한 미래가 보이지만 분명히 봄처럼 따듯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봄 하면 떠오른 꽃들 중에 척박한 담장 밑에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제비꽃을 반기지 않을 분은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오랑캐꽃이라도 부르기도 하지만 슬픈 과거에 대한 기억보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제비꽃으로 더 부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생물의 종은 2015년 기준으로 45,295종입니다. 그중에 움직이는 동물계가 26,575종으로 가장 많은 생물종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곤충의 종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이 식물계로 7,616종으로 전체에서 16%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식물계 중에서 우리 주변에 사는 대부분의 식물은 줄기에 물관과 체관이 있는 관속식물로 4,425종으로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제비꽃은 이 관속식물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제비꽃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40여 종이 우리나라에 살아가고 있으며, 변종까지 포함하면 60종 정도가 됩니다. 봄철에 주변에서 보는 제비꽃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40여 개가 더 있다고 생각하시면 놀라운 숫자입니다. 작은 제비꽃을 찾아 몇십 년을 연구한 사람이 엮은 도감이 발간되기도 했는데, 다양한 제비꽃들이 높은 산부터 물가까지 또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육지에서 섬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야기를 보면 신비롭고 대견한 생각이 듭니다.

제비꽃은 꽃에 꿀주머니가 달려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오랑캐의 머리 모양과 닮았다고 오랑캐꽃이라 불렸다고 하고, 제비꽃이 피는 시기에 오랑캐가 양식을 뺏기 위해 쳐들어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비꽃의 다른 이름은 시름꽃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제비꽃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생명입니다. 제비꽃은 형태로 줄기가 있는 유경종과 줄기가 없는 무경종으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보통 들판에서 만나는 종들은 대부분 줄기 없는 무경종이고, 줄기가 있어 줄기 부분에서 꽃이 나오며 퍼질 듯 자라는 제비꽃은 유경종입니다.

제비꽃의 이름은 대부분 형태나 서식하는 특징으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보라색 꽃이 피며 전국에 다 살아가는 제비꽃, 꽃이 흰색으로 핀다고 붙여진 흰꽃제비꽃, 흰젖제비꽃, 잎과 줄기 및 꽃잎의 안쪽에 털이 있는 털제비꽃, 남산에 처음 발견되었다고 붙여진 남산제비꽃, 잎이 단풍잎을 닮아 단풍제비꽃, 잎에 알록달록한 문양이 있는 알록제비꽃, 잎이 고깔처럼 말려있어서 붙여진 고깔제비꽃, 강원도 석회암 지역과 영월 동강에 서식하는 동강제비꽃, 노란색 꽃을 피우는 노랑제비꽃. 꽃이 콩알만 해서 붙여진 콩제비꽃 등 다양한 제비꽃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제비꽃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제비꽃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고산과 저지대에 따라서 서식하는 종류도 다릅니다. 1,500미터 고산에 사는 장백제비꽃, 참졸방제비꽃 등이 살아가고 해발 1,000미터에는 금강제비꽃, 뫼제비꽃이 살아갑니다. 지역별로 서식하는 종도 다른데 북부지역, 중부지역, 남부지역, 섬 등 각자 자신들이 맞는 곳에 살아갑니다.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제비꽃이 이렇게 다른 서식지와 형태로 살아가는 것은 서로 영역이 겹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온 결과입니다. 흔하게 보는 작은 생명들 역시 그 자리에 적응하며 자신의 영역을 만든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오랜 시간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 각자의 위치에 갖는 존재적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하찮은 풀이나 잡초라 생각할지라도 생태계에 어떤 구성을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새해가 시작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새해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생명들이 존중받는 새해가 되길 바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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