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겸 대기자

영화 '인턴' / 다음 영화
영화 '인턴' / 다음 영화

[중부매일 메아리 박상준] 30대 여성이 직원 5명의 작은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 3년 만에 250명이 일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운전사가 있는 고급차에 아이비리그 출신 비서까지 두었다. 젊은 여성들의 로망이 될 만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너무 벅찼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남편은 어린 딸을 돌보고 아내를 외조하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을 책임졌다. 영화 '인턴'의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부부 얘기다. 줄스의 남편 같은 사람을 '라테파파'라고 한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웨덴 아빠를 이르는 말이다. 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고다녀 이렇게 부른다. 신조어를 만드는데 비상한 능력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를 돌보는 아빠를 라테파파 말고도 '허수애비', '육아대디', '프렌디' 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테파파'의 대척점에 있는 조어는 무엇일까. '아메리카노 마마'도 아니고 '전업주부'도 아니다. 난 '경단녀(경력단절여성)'라고 본다. 육아 때문에 할 수없이 퇴사해 직장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다. 지난해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소설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이다. 우리나라 30~40대 여성이 겪는 출산, 양육의 어려움. 경력 단절, 성차별을 생생하게 그려내서 폭넓은 공감을 샀다. 그 책을 읽은 어느 30대 경단녀는 인터뷰에서 "제 이야기를 쓴 것처럼 굉장히 소름 돋고 아주 많이 공감하고 씁쓸했다"고 말했다. 통계청 조사결과 우리나라에서 경단녀는 기혼여성(15~54세) 5명중 한명 꼴이었다.

이 땅의 수많은 경단녀 '김지영'의 마음을 덜 힘들게 하려면 제도와 문화가 변해야 한다. 라테파파라는 별명이 생긴 스웨덴은 벌써 70년대 초반에 부담 없이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부모보험제도'가 도입되고 육아휴직 이름도 '엄마휴직'에서 '부모휴직'으로 바뀌었다. 육아휴직 급여도 임금의 80%에 달하고 육아 휴직중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으면 휴가가 소멸되는 아버지 할당기간도 90일에 달한다고 한다. 이래서 스웨덴은 2천년 합계출산율 1.23명에서 2017년 1.78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도 여성들의 독박육아가 줄고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지난주 통계청이 공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008년 1.2%에 불과했으나 2017년에는 13.4%로 10년 만에 열배이상 늘었다. 2014년에 '아빠의 달'을 도입하는 등 남성 육아휴직 장려책 때문이라는 분석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하고도 육아는 외면하는 '양심불량' 아빠들도 급증하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 중 해외여행·대학원 진학 등 육아와 무관한 일을 하다 적발돼 육아휴직 급여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건수가 3년 새 4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이런 아빠들은 라테파파가 아니라 '허수애비'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인구절벽에 몰린 일본은 1억총활약장관직까지 신설할 만큼 저출산이 국가적 과제다. 우리나라도 육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출산이 늘어날 리 없다. '경단녀' 대신 '라테파파'가 익숙해지려면 젊은 아빠들이 육아휴직기간에 홀로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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