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건강으로서의 정치
일상의 건강으로서의 정치
  • 중부매일
  • 승인 2018.12.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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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우동. / 클립아트코리아
우동. / 클립아트코리아

가난한 세 모자는 어느 해 섣달 그믐날에 북해정에 앉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해 셋이서 나눠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주인이 몰래 반 그릇의 양을 더 준다. 매년 그 날에 그런 일이 일어나자 주인은 그들을 위해 예약석까지 마련해 놓는다. 오래도록 그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14년이 흐른 후에 나타난다. 장성한 큰 아들이 외과 의사가 되어 우동을 세 그릇 주문한다. 주인과 종업원, 따스한 배려를 못잊어 찾아온 가난했던 가족 모두 감동에 휩싸인다.

1989년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의 다음 이야기도 유명하다. 국회의원들이 불소통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을 때 어느 국회의원이 일어나 구리 료헤이의 저 소설 <우동 한 그릇>을 낭송한다. 그 생뚱맞은 기습에 탁한 설전이 오가던 국회의원들이 숙연해지더니 눈물을 적시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친구들 모임에서 주제가 헐겁게 돌아가기에 내가 저런 이야기를 한 후 "정치에 이런 맛도 있어야지. 일본은 그래도 이런 것도 있었네"라고 말하자 "그때 뿐이야." 친구 한명이 곧장 대답했다. 모인 다섯 명 모두 즐겁게 웃어댔다. 정치가 으레 그런 것을 오래도록 겪어온 것에 대한 반사 반응일 것이다.

"그때 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대단한 거야."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 말도 신선했다. 정치가 감동적인 것은 될 수 없을까. 왜 없겠는가. 정치야말로 감동의 봇물일 때가 있었다. 1987의 간접 선거에서 직접 선거로의 전환이나 노무현 대통령 당선, 최근의 남북정상회담 등등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이 가뭄에 콩나듯 하는 정도이고 정치에 실망을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 시민들의 보편적 정서일 듯하다.

정치에 너무 많은 감동이 일어나도 탐탁한 것이 아니다. 정치는 환멸을 자아내서도 안되지만 감동의 질주를 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비용도 많이 들고 포퓰리즘으로 빠질 확률이 크다. 정치는 일상이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이며 문제가 생기면 고치는 수리공 정도이다.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건강한 터빈 정도면 적절하다.

배타적인 자기 주장, 묵살, 이기기 위한 궤변, 굳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신, 진정한 가치인 삶과 생활에 대한 깊고 진지한 이해 없는 불합리한 정책 등등 비상식적이며 일상성에 위배되는 일들이 난무해 온 게 우리나라 정치판이다. 우파가 잡든 좌파가 잡든 그런 소모적인 일에 휩싸인채 정치 본연의 역할에 못미치는 것에선 공통점을 보이는 것 같다.

<우동 한 그릇>에 깃든 사랑, 배려, 자기 자신과의 약속, 환대 등등의 긍정적 가치들로 감동에 휩싸였을 일본 국회의 한 풍경도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런 미덕은 일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해 효과를 띨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환멸에 대한 반동적인 해프닝이며 현실적 왜곡에 대한 비현실적 퍼포먼스일 뿐이다. 그런 일은 두번째 일어날 때 효과가 극히 떨어지는 것이기에 반복될 성격도 아니고 그 의미도 반감된다. 일회적인 것으로서 의미를 지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정치를 다소나마 호전을 시켰으면 좋은 일이지만 그런 일이건 그 모티프가 된 정치건 모두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일상성으로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이렇게 비판적으로 해석되면서도 일본에서의 그 퍼포먼스가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선 그런 것조차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본연의 본질에 합당하게끔 일상에 근거하고 일상성을 회복해서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하는 기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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