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광규 충청북도교육정보원장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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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진. 7년 전에 그 애를 처음 보았다.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도와주는 5학년 교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아저씨는 누구세요?"하고 다른 아이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됨직한 순진하게 생긴 남학생이 나를 보고 신기한 듯 물었다. "나? 응. 교감선생님이지..." "교감이 뭐에요?" 이번엔 눈이 유난히 크고 동그란 애가 물었다. "야! 넌 교감이 뭔지도 몰라?" 선진이는 큰소리를 쳤지만 이내 다음 설명은 하지 못하고 멋쩍은 웃음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난 그때 한숨만 나왔다. 5학년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영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난 가져간 사탕 몇 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내려왔다. 6학년에 올라와서 이 아이들을 더 자주 만났다.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 제로화를 부르짖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청에 부응하고자 6학년 선생님들과 대학생 멘토 등을 총 동원하여 이 아이들에게 보충학습의 기회를 더 주었다.

교대생이 하는 대학생 멘토 수업에 선진이가 들어 있었다. 교무실 옆 작은 회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였기에 나는 자주 그 곳에 들러 선진이와 재식이 그리고 탈북자 자녀인 소이에게 빵과 과자 등을 자주 나누어 주곤하였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사탕이나 과자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입 안에 과자를 더 넣을 수 없을 때까지 쑤셔 넣곤 하였다. 마치 가을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처럼.......

아이들에게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되도록 공부 열심히 하란 채근은 안했다. 어느 날인가. 선진이가 단단히 화가 났다. 집에 일찍 가고 싶은데 보충 학습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불만이었던가 보다. 선진이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오늘은 공부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현진아 공부는 평생 동안 해야 하는 거란다. 교감샘도 지금까지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걸?" 나는 애써 선진이를 위로하였지만 그것이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노숙자들은 공부 안 하잖아요? 그냥 놀고 싶어요" "선진이는 어떻게 자신을 노숙자와 비교해? 그리고 공부 안하여 노숙자 된 사람은 없단다." "싫어요. 나는 노숙자가 부러워요. 노숙자가 될래요"하며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용히 나왔다.

하루는 선진이가 교무실 청소를 아주 신명나게 하고 있었다. 그날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나온 날이었고 다행히 선진이는 기초학력 미달에 한 과목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선진이의 입에 홍삼 캔디를 넣어 주면서 "먹고 나서 나에게 어떤 맛인지 말해 주겠니?" 했더니 캔디를 입에 넣고 한참 있다가 "인삼 맛이 나는데요?"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에 산삼을 먹은 적이 있다고 자랑을 했다.

정광규 충북교육정보원장.<br>
정광규 충북교육정보원장.

청소가 다 끝난 시간 선진이가 내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불쑥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빵이었다. 얼마나 손으로 주물렀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풀어져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빵과 사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안다. 여러 차례 "교감선생님이 다 아니 그냥 네가 먹어라" 했건만 선진이는 끝끝내 내 손에 빵을 남긴 채 사라졌다. 사라져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조금은 더 당당하고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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