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는 상처 제천 화재참사 1주기
류건덕 대책위원장 "1년 지나도록 변한 건 없어" 한탄
순짐 아내 뜻 따라 동남아 빈민 집짓기 자선 사업 펼쳐

지난해 12월 21일 화재로 29명의 목숨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 중부매일DB
지난해 12월 21일 화재로 29명의 목숨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 중부매일DB

[중부매일 서병철 기자] "화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나도록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유가족들이 본연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진실규명이 제대로 안돼 답답할 뿐입니다."

제천화재참사유가족대책위원회 류건덕(59)위원장은 화재 발생 1년을 하루 앞둔 20일 나오는 건 '한숨' 뿐이라고 한탄했다.

류 위원장은 "(충북도의)소방관들에 대한 징계도 없이, 항고한 것도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상태로, 협상이라도 성사돼 빨리 끝냈으면 하는 것이 유가족 모두의 바램"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충북도 소방의 구조적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인재(人災)'였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유족 측은 지난달 29일 소방지휘관들을 처벌해 달라며 항고했으며, 재정신청도 준비 중이다.

소방지휘관 형사 처벌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향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부실대응 여부를 조사한 충북지방경찰청 수사본부의 기소 의견에도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은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소생활체육공원에 세워진 추모비.
하소생활체육공원에 세워진 추모비.

이런 와중에 국회는 지난 10월 충북도 국정감사에서 "제천 화재 참사는 국가 책임"이라며 "(정부 및 충북도)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충북도는 70억원의 위로금을 제시하며 협상을 제의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충북도가 잠정 합의안 초안을 교부한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합의안에 단서를 달아 '유가족들은 소방지휘관에 대한 검찰 항고를 취하하고 동시에 재정신청도 포기한다'는 실로 어이없는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대책위는 "충북도가 소방지휘관에 대한 항고를 취하하고 재정신청도 포기하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는 한 여타의 협의는 결단코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린다"고 협의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류건덕 위원장은 화재 참사로 고인이 된 아내의 뜻에 따라 동남아시아 국가의 빈민을 위한 집짓기 자선사업도 이어가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한 고등학교 교감인 그는 아내가 떠난 뒤 제법 많은 돈이 든 통장을 발견했다.

바로 아내의 기부 비자금 통장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동안 아내가 자신 몰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의 빈민을 위한 집짓기 자선사업에 참여한 사실을 알게됐다.

아내의 목표는 사랑의 집 10채를 기부하는 것으로, 살아 생전 2채를 이미 지었다.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틈틈이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봉사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류 위원장은 아내의 뜻을 잇기로 결심하고, 아내가 다니던 교회에 1년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교회를 통해 말레이시아에 파견 나가 있는 선교사에게 전달됐으며,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3채의 집을 더 세웠다.

이제 아내의 목표까지 5채 만 남았다.

류 위원장은 "정년이 얼마 안 남았지만 계속해서 집을 짓겠다"며 "그것이 숨진 아내에 대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말했다.

오늘 오후 3시 추모비가 세워진 하소생활체육공원에서 유족들의 뜻에 따라 1주기 추도식이 조촐하게 치러진다.

추도식이 거행되는 하소생활체육공원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과 리본, 국화와 새겨진 1.2m 높이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키워드

#제천화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