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저녁 / 이상국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린 죄로
나는 나에게 벌주를 내렸다

동네 식당에 가서
등심 몇 점을 불판에 올려놓고
비장하게

맥주 두 병에
소주 한 병을 반성적으로
그러나 풍류적으로 섞어 마시며
아내를 건너다보았다

그이도 연기와 소음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더 이상 이승에서는
데리고 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

최호일 시인.
최호일 시인.

아마 아내의 생일이 유월 어느날이었나보다. 시인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안다. 큰일이다. 그대로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저녁에 슬그머니 술 생각이 나 생일을 핑계 삼아 허름한 동네 식당에서 아내와 마주한다. "맥주 두 병에 / 소주 한 병을 반성적으로 / 그러나 풍류적으로 섞어 마시며"생일을 축하한다. 그러나 어쩌랴. 반성, 풍류 좋아하시네. 박살이 난다. 독자는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할지 오래 난감하다. / 최호일 시인

키워드

#시의플랫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