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해넘이. / 클립아트코리아
해넘이. / 클립아트코리아

참으로 숨가쁘게 달려온 한 해도 어느덧 황혼이 짙어졌다. 첫 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에 분주하기는 매한가지다. 골목마다 눈싸움을 하며 티없이 웃는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곤 한다. 어디 그뿐이랴. 젊은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에서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기도 한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속에서 우리네 삶의 여정은 이어져 갔다. 때로는 울기도 했고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너무 앞만 보고 쉼없이 경주하여 오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든다. 만약 내가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내 멋대로 행동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여 자기 멋대로 행동할 것이 뻔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의 일을 할 때 그것이 남에게 이익을 주게 될 것인가 해로움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귀하고 중한 만큼 남도 귀하고 중하다, 내가 남의 인격을 존중해주면 그도 나의 인격을 존중해줄 것이다. 우리사회는 서로 도우며 도움을 받고 사는 더불어 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남을 위하는 마음, 남을 존중하는 마음, 여기에 사람들은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함께 사는 사람들 간에 신뢰가 생기게 된다. 그래야만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이것이 배려요, 함께 살아가는 윤리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다. 바다 속 한구석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모두 빨강색 고기였는데 한 마리만 검정 고기였다고 한다. 그 고기는 헤엄이 무척 빨라 달리기 시합에서 늘 일등이었고 큰 물고기가 공격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산호 속으로 빨리 숨을 수 있었으니 이름이 '으뜸 헤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납고 굶주린 다랭이의 공격을 받아 같이 놀던 빨강 고기들은 모두 잡아 먹히고 으뜸헤엄이만 도망치게 되었다. 그는 두렵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러나 깊은 바다속은 워낙 경이로운 것들이 많아서 여기저기를 헤엄치는 사이 그는 다시 행복해졌다. 그러다가 그는 바위 뒤에 숨어사는 작은 물고기 떼를 보았다. 그는 기뻐서 빨강 고기 떼에게 같이 나가서 세상 구경을 가자고 했으나 그들은 잡아먹힐 것이 두려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평생을 여기서 움크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하고 으뜸 헤엄이는 생각했다. 이윽고 그가 소리쳤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모두 함께 헤엄을 치는 거야" 그는 빨강 물고기에게 서로 바짝 붙어 각자 자기자리를 지키며 헤엄치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 그들이 거대한 한 마리 물고기 모양을 이루어 헤엄칠 수 있게 되자 으뜸 헤엄이는 말했다. 내가 눈 역할을 할테니 따라와, 이리하여 그들은 헤엄을 치며 다랭이등을 쫓을 수 있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아주 짧은 예화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크다. 무엇보다도 작은 물고기들도 서로의 개성을 인정해 주면서 단합된 힘을 발휘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다. 한해를 접으면서 나는 물론 가족, 이웃, 지인들에게 얼마나 격려해 주었으며 얼마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었는지 그리고 함께 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남을 배려할 수 없고 감사 또한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한해의 끝자락에 부끄러움 속에 조용히 나의 자화상을 뒤돌아 본다. 아울러 내년에는 더 좋은 일만 있겠지 하는 작은 바램으로 또 하루를 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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