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청와대 본관 전경.
청와대 본관 전경.

[중부매일 박상준 칼럼] '내로남불'. 이젠 설명조차 필요없는 진부한 조어가 됐지만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펼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수에서 진보로 권력 지형도가 바뀌었다고 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권력형 사건이 터지는 것은 아니다. '적폐'라고 할 수 있는 동일한 사건이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놀랍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인 사찰'이다. 한국전쟁 중 수만 명을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감시한 국민보도연맹에서 시작된 민간인 사찰은 정권 때마다 계승돼 온 악습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국군보안사령부를 탈영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민간인 1천303명을 사찰했다고 폭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유가족 사찰로 검찰조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관련 2012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쏟아낸 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우선 지금 드러난 사실만 갖고도 다수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을 한 것이고, 국가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범죄행위"라며 "개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정부 안에 범죄조직을 운영한 셈"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민주주의 후퇴를 보여주는 상징적 증거", "민간인 불법사찰로 대통령 탄핵 가능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는 민간인불법사찰의혹으로 여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청와대 특검반 수사관이 전방위로 헤집고 다니며 민간인을 뒷조사하는 무절제한 권력의 남용은 이전 정권보다 더 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의 DNA에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쇄기를 박았다. 도덕성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오만함이 묻어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말바꾸기도' 흔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직후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탈핵시대로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체코방문에선 "한국은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한국 원전(原電)의 안전성과 기술력을 강조했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다. 여기에 '언행불일치'도 여전하다. 최저임금 쇼크로 자영업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속도조절을 언급하면서 경제정책을 수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정부는 실제로 일하지 않은 주휴시간에도 최저임금을 주는 기존 입장대로 강행해 기업과 서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래서 정부가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에서 큰 정치인이 되려면 뻔뻔함은 기본이고 말 바꾸기, 언행불일치, 목적을 위해서는 정체성 버리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능력 없으면 아예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미국에는 역대 대통령의 업적과 리더십을 연구한 책이 흔하지만 그 중에는 순위를 매긴 저서도 있다. 명망있는 역사학 교수들과 미국사 전문가 719명이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을 비롯해 42대 클린턴까지 심층 분석하고 연구해서 랭킹을 매긴 '대통령의 순위(Rating the Presidents)'라는 책이다. 대통령의 평가항목은 지도력, 업적, 위기 관리능력, 정치력, 인사관리와 정직성등 여섯가지다. 1위는 제16대 에이브라함 링컨, 꼴찌는 제29대 워런 하딩이었다. 두 사람을 최고와 최악으로 가른 것은 '능력과 정직성' 두 가지였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이 능력이 있고 지도력이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 거나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똑같은 사안도 '내로남불' 식으로 몰아부치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정권이 이렇다면 국민들이 괴롭다. '정치책사'라는 말을 듣는 윤여준 전환경부장관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을 '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말로 정리했다. '눈은 높은데 재주·능력은 부족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정권은 재주·능력은 고사하고 정직하지도 못했다. 늘 이런식이라면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키워드

#박상준칼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