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충북대학교 장학 어머니' 신언임 여사
[인터뷰] '충북대학교 장학 어머니' 신언임 여사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12.26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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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때문에 못배운 한 인재양성으로 소원 풀었어요"
신언임 여사.

[중부매일 김금란 기자] "내가 자손이 없어 죽으려고까지 했는데 어머니가 낳아주신 몸값이라도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그때부터 밤낮없이 돈을 벌었어. 못 배운 한도 있고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겨울에 난로도 없는 가게에서 번 돈으로 충북대학교에 장학금을 냈는데 너무 기뻐 춤까지 췄어." 충북대 장학 어머니 신언임 여사가 충북대학교에 처음으로 기부 당시를 회상했다.

신 여사는 26일 가자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세월을 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번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연을 들려줬다.

신 여사는 '강정'(江亭)이라는 호를 직접 지었다. 신 여사가 태어난 청주 오창의 강정마을 옆에는 연못이 있다. 신 여사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 다섯째 딸로 태어난 자신이 살아가면서 구박받고 고생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갓난아기를 안고 마을 옆 연못을 찾았다가 다시 살아갈 희망을 안고 돌아온 곳이다. 신 여사는 아픈 사연이 있는 이곳에 대한 애착과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 어린 시절 정자에서 놀던 기억이 그리워 호를 '강정'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신 여사는 "내가 어머니를 살린 귀한 목숨"이라며 "귀한 목숨을 낳아주신 어머니께 초등학교 졸업하고 전매청에 다니며 월급봉투 몇 번 갔다 준 게 그나마 효도"라고 말했다.

강정 신언임 여사는 1932년 가난한 집안의 1남 8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초등학교도 너무 공부를 하고 싶어 아버지 친구였던 당시 주성초등학교 교장을 직접 찾아가 사정을 해서 다니게 됐다. 배울 형편이 못됐던 신 여사는 다시 태어나면 맘껏 공부하는 게 소원이다.

결혼 10년 만에 혼자가 된 신 여사는 30여 년간 홀로 행상과 노점, 떡볶이 장사 등으로 생계를 꾸리며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검소한 생활로 돈을 모았다.

주위에서 쓰지도 않을 돈 뭐 하러 모으느냐는 수근거림이 늘 따라 다녔지만 신 여사는 그렇게 모은 재산을 지역인재 양성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지난 1993년 충북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신 여사는 충북대 학생들이 곧 본인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당시 33억원 상당의 청주시내 한 건물을 충북대에 기탁했다. 배움의 한을 인재양성으로 푸는 첫걸음 이었다. 이 기부금은 '신언임장학금'으로 명명돼 그동안 가정형편 어려운 (408)명의 학생에게 (8억2천400여만원)이 전달됐다.

신 여사는 충북대 개교 60주년을 맞은 2011년에 또 10억3천만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8억원을 또 내놓다.

충북대도 신 여사의 못 배움에 대한 아쉬움을 풀어드렸다. 2011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신언임 여사에게 명예 행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81세의 '충북대 어머니'가 빛나는 학사모를 쓴 뜻 깊은 날이었다.

나눔 실천가로 살아온 신 여사의 공로에 대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치하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12년 제33회 김만덕상 수상자로 신엄임 여사를 선정·시상했다.

김만덕(1739∼1812)은 조선시대 제주에서 해상 유통업을 운영한 여성 상인으로 1794년(정조 18년) 제주도에 큰 흉년으로 대기근이 닥쳤을 때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해 '제주 의녀'로 불렸다. 제주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나눔 실천가로서의 신 여사의 공로를 인정했다.

충북도도 지역 인재양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헌신한 신 여사에게 2016년 '함께하는 충북 행복한 도민' 표창패를 전달했다.

신엄임 여사는 그를 부르는 많은 호칭 중에 '충북대학교 할머니'가 제일 좋다고 한다. 충북대에서 못 배운 한도 풀었고, '신엄임 장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제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엄임 장학생' 중에는 공무원으로 청와대에서 나랏일도 하고, 의사, 변호사 등 사회 곳곳에서 기둥역할을 하며 신 여사의 아들·딸 노릇을 하고 있다. 젊어 고생으로 이젠 약 없이 못 버티는 '장학 엄마'를 위해 집안청소 도우미도 지원하고, 명절 등에는 자식들까지 데리고 인사를 온다.

신 여사는 "많은 아들, 딸들이 생겨 기쁘고 엄마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다"며 "남을 위하는 일은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좋아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갈수록 충효사상이 사라지고 있는데 가정교육부터 바로잡아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길 바란다"조언했다. 

 

 

충북대 제1학생회관 2층에 설치된 '숭선재'

교육독지가 숭고한 정신 기린다

충북대학교는 학교발전과 학생들의 학업 정진을 위해 장학금을 기탁한 교육독지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충북대는 지난 2010년 4월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하며 모은 전 재산을 학생들을 위해 선뜻 내놓은 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숭선재(崇善齋)'를 개관했다.

제1학생회관 2층에 설치된 '숭선재'에는 수십억원 상당의 건물 등을 기탁한 고(故) 김유례 여사와 신언임 여사, 임순득 여사, 전정숙 여사를 소개하는 사진 자료와 영상물 등을 전시해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재학생은 물론 사회에도 널리 알리고 있다.

고 김유례 여사는 1979년 3월 청주시 남문로 2층짜리 건물(당시 평가액 15억원 상당)과 현금 5천만원을 기탁했다. '청주의 구두쇠 할머니'로 유명한 신언임 여사는 1993년 6월 청주시 남문로 건물(〃30억원 상당)을 학교에 맡겼다.

전정숙 여사는 1997년 12월 괴산군 증평읍 건물(〃10억원 상당)을, 임순득 여사는 1999년 1월 청주시 운천동 건물(〃12억원 상당)을 기증했다.

충북대 사범대 뒤편 체육관 왼쪽 산자락에는 작은 묘소가 하나 있다. 충북대가 감사와 존경의 표시로 교육독지가를 위해 마련한 사후(死後) 안택(安宅)이다. 이 안택에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삼남매를 잃고 평생을 홀로 살며 모은 재산을 기증한 김유례 할머니가 지난 1997년(향년 88세) 제일 먼저 입주했다. 이어 전정숙 여사의 남편 최공섭씨(1998년ㆍ향년78세), 임순득(2012년·향년 90세)가 뒤를 이었다. 신언임 여사는 본인의 희망으로 가묘를 먼저 만들었다. 충북대의 독지가로 인연을 맺은 이들은 죽어 한 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충북대도 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예우를 다하려고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고 있다.

또 충북대는 매년 신언임 여사를 포함해 교육독지가들을 모시고 국내 유명 온천이나 관광지를 여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매월 생활비와 병원진료비 지원, 말 벗 동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독지가 예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할머니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도 명절, 생일 등에 직접 찾아 뵙고 애틋한 정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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