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파괴·인간의 욕망… 도심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금혜원 作 'Blue Territory 13'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우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CONCRETOPIA 가상의 유토피아' 전시.

이번 전시는 우민아트센터에서 주최하고 한미사진미술관이 주관해 수도권에 집중된 전시 콘텐츠를 지역으로 확산하고, 우수 전시가 지역 유휴 공간에 순회 전시되도록 지원하는 '미술창작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지난 2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019년 2월 16일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 다음 세대의 지속적인 후원자 및 조력자가 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우리의 삶의 터전인 '도시'를 바라본 세 작가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도시환경에, 좀 더 정확하게는 개발 지상주의가 빚은 도시의 균열에 주목했다.

한국의 30, 40대 세대들에게 '도시'란 그들이 태어난 곳이며,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아정체성을 키워나간 곳이다. 이들에게는 전통보다는 새로운 변화가 익숙하고 콘크리트 철골구조를 가진 아파트라는 편리한 삶의 방식이 익숙하다. 또한 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문화와 도시의 구조 속 다양한 삶의 과정을 경험했다. 이러한 공통점을 가진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삶들이 켜켜이 담겨 만들어진 도시의 정체성과 도시의 역사, 변화하는 도시의 생태와 도시가 만들어낸 제도들에 주목한다.

전시 제목인 'CONCRETOPIA'는 'CONCRETE'와 'UTOPIA'의 합성어다. 1960년대 이후 성장의 시대를 걸어온 한국 사회에서 속도감의 표상이 된 '콘크리트'는 시의적절한 신재료로 각광받으며 기존에 많은 것들을 대체했다. 허물고 새로 짓는 행위를 반복하게 만든 이 '인스턴트한'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단단한 물성 덕분에 도시인들이 꿈꾸는 더 나은 삶을 튼튼하게 지탱해 줄 적합한 재료로 간주됐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금혜원, 박형렬, 그리고 윤상혁 작가는 이처럼 콘크리트를 벗 삼아 도시인들이 욕망해온 유토피아, 즉 콘크리토피아가 오히려 현실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양산한 '비뚤어진 공상'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 혹은 가려져 알지 못했던 뜻밖의 장소나 사물들을 포착한 세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가 도시에 대해 가져온 이상(理想)이 도대체 무엇이고, 무엇을 지향해 온 것인지를 묻는다.

왼쪽부터 박형렬, 윤상현, 금혜원 작가.

먼저 금혜원 작가의 'Blue Territory' 시리즈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끊임없이 지워 나가는 재개발 과정 속에서, 그 변화의 속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공백과 균열을 나타내고자 했다. 철거지역의 침수방지 용도로 사용되는 푸른 타포린이 거대한 폐허 위를 덮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일상에 가해진 폭력과 재개발의 부정적 측면을 은폐하고 포장하는 풍경 같다. Blue Territory는 개발의 논리에 의해 점령되고 확장되는 영토처럼, 이곳으로부터 떠나가야 하는 계층을 분리해내면서 끊임없이 도시를 낯선 곳으로 만들어간다는 의미의 제목이다. 작가는 과장된 색감과 확장된 화면으로 이루어진 다소 초현실적 사진을 통해 푸른색의 표면이 가리고 있는 상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Urban Depth' 시리즈는 도심의 깊은 지하에 위치한 쓰레기처리 시설에 관한 것으로 지하세계의 인공적 환경과 그 비가시성에 대한 관심사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거대한 지하공간에서는 우리가 미처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도시의 불순물들을 삼키고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은 서울이라는 도시 한복판에 엄연히 자리하면서도,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공원이나 광장으로 스스로를 은밀하게 위장해야 하는 암묵적 규칙 아래 존재한다. 이는 이질적인 것의 공존이자 상호 보완적인 절충이며, 다층적 욕망이 공존하는 도시의 속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작가는 원색적인 색감과 어둡고 습한 기운이 만들어내는 공간 특유의 질감을 강조하면서, 은폐된 도시 이면의 생경한 일상을 조명하고자 했다.

박형렬 작가의 'Figure Project' 시리즈는 아직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공간에 물리적인 변형을 가하고 변형된 대상을 기록한 작업이다. 작가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극히 평범한 공간에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에 물리적 실험과 행위를 가하고, 그 과정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요소들을 만들어낸다. 이때 만들어진 대상들은 촬영 뒤, 없어지는 가변적 풍경이 된다. 'Figure Project'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자연공간을 파내거나 덧대어 입체적으로 구성한 뒤 변형된 대상을 부감 형태로 촬영해 형태의 크기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규정화된 폭력성에 대해 은유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두 번째는 추상적인 조형형태 속에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작업으로, 주로 천과 실로 제작한 공간 속에서 인물은 그곳을 점유하고 또 다른 형태의 영역을 만들어 나간다.

윤상혁 작품.

'The Captured Nature'는 자연을 물리적인 형태로 포획하는 설치와 그것을 행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자연을 재구성하는 행위와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자연 지배적 욕구로 만들어진 시스템을 이탈하고, 그 과정 안에서 만들어지는 불규칙성을 기록한다.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다 년간 찾은 공간들이 계절적 변화 외에는 아직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있는가 하면, 멋들어진 건물이나 잘 꾸며진 공원이 들어서 촬영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뀌어 버린 곳도 있다는 것이다. 자연공간들은 동시대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에 아직 부합하지 않았을 뿐, 곧 보기 좋게 꾸며질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박 작가는 "서울에 살면서 만나고 보게되는 여러가지 부조리한 것들이 어떤 도시풍경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며 "땅을 파는 등의 행위를 통해 더 나은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윤상혁 작가의 'Urban Landscape' 시리즈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독립적으로 만들어낸 공간과 그 안에서 다시 자연을 찾으려는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단지 우리 자신의 필요와 요구를 중심으로 모든 생활공간을 재배치하고 꾸며왔다. 과연 이러한 공간과 상황을 동물, 식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그들의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 공간은 그 본연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윤상혁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 우리의 생활공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도시인들이 자연에 흠집을 내며 만든 인위적인 공간에 다시금 자연이 조성되는 모순적인 풍경을 포착한다. 자연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는 이미 주어진 자연을 버리고 다시금 자연을 찾는 도시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모순되고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윤 작가는 "원래는 'Landscape' 풍경이라는 제목을 지으려다가 사람이 만들어낸 공간안에서의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Urban Landscape'으로 제목을 정했다"며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안에서 자연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필요없으면 방치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찍은 작업으로 자연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큰 근원이었다"고 설명했다. / 이지효

#금혜원, 박형렬, 윤상혁 작가 소개

이번 전시에 참여한 금혜원, 박형렬, 윤상혁 작가는 콘크리트를 벗삼아 도시인들이 욕망해온 유토피아, 즉 콘크리토피아가 오히려 현실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양상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금 작가는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미술학부와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번의 새인전과 필리핀, 타이페이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단체전 이력이 있다.

박 작가는 서울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석사)를 졸업했다. 4번의 개인전과 미국 등 국내외에서 단체전을 실시했다.

윤 작가는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 Photography, Video and Related Media 석사 졸업을 했고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실시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