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 엄마에서 출판사 사장으로…"행복을 기록해요"
임용 3번 낙방 후 주부생활… 사회적 기업서 첫 직장
어르신 문해교실 지도 중 기록 중요성 깨달아 창업

세 아이의 엄마이자, 33살 청년여성, 자서전출판사 '기억록'을 창업한 안보화씨가 자신의 손으로 펴낸 자서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김미정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아이 기르는 입장에서는 '직장'보다는 '창업'이 더 수월해요.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스펙은 근속 7년을 자랑하는 프로전업맘뿐이었는데 '일'을 하면서 희망을 얻고 제 자신의 가치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창업에 뛰어든지 1년만에 자서전출판사 '기억록'을 이끌고 있는 안보화(33)씨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기록일을 하는 출판사 대표이고, 33살 청년여성이다. 

그녀는 임용고시 3번 낙방후 전업주부 생활을 이어오다가 2016년 충북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 새일인턴을 통해 7년의 경력단절을 끊고 취업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2년간 일과 가정을 병행하다가 2017년 말 충북새일본부 충북여성창업아카데미 대상을 수상하면서 청년창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10월 '기억록' 사업자등록, 11월 상표출원, 특허출원을 마쳤다.

"위대한 사람의 역사와 달리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요. 요즘은 기록이 주로 SNS, 핸드폰에 있으니까 휘발성이잖아요. 온 가족이 가족앨범을 보면서 낄낄낄 웃듯이 자서전을 보면서 함께 웃는 문화가 확산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일반인들의 자서전 출판업을 창업하게 됐습니다."

개인출판기획자가 꿈인 안보화씨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자서전 출판을 창업아이템으로 내놓았다. 개인이 자서전을 출간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50만원, 평균 제작기간은 6개월이지만, 이를 대폭 줄이고 자서전의 대상을 '일반인 누구나'로 문턱을 낮춘 것이다.

"자서전의 대상이 유명인사에서 일반인에게로 확대되고 있고, 고령화사회에서 웰다잉문화, 엔딩노트가 의미가 있으니까 삶의 일면을 제대로 기록하고 이용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안보화씨가 만드는 자서전 샘플. / 안보화씨 제공<br>
안보화씨가 만드는 자서전 샘플. / 안보화씨 제공

안씨가 만드는 자서전의 특징은 가족참여로 이뤄지는 어플리케이션 활용 자서전, 시각·청각을 활용한 멀티북, 전문인력을 활용한 인생스토리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문작가가 면대면 인터뷰를 통해 개인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전문사진작가가 주인공의 일상 곳곳을 사진으로 들여다본다. 또 어플을 통해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기본자료와 사진자료를 제공받아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꾸미고, QR코드를 삽입해 인터뷰 동영상, 목소리 파일도 들을 수 있다.

"칠순선물이나 부모 결혼기념일에 의미있는 선물이 필요하잖아요. 가족들이 어플에 가입해서 각종 사진을 올려주면 동영상, 녹음파일 등을 편집해서 20~30페이지의 매거진 형태로 자서전을 만드는 거예요."

창업 아이템은 새일인턴중 찾았고, 창업자금은 여성창업아카데미 대상 상금 600만원과 올해 8월 중소벤처기업부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지원사업에 공모해 받은 4천만원이 밑천이 됐다. 안씨가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까지는 충북새일본부의 역할이 컸다. 전업주부를 새일인턴으로 끌어냈고, 새일인턴중에 창업아이템이 나왔고, 창업교육을 통해 창업가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아이 기르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선생님이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주변에서 들어서 선생님을 생각했던 건데 아이를 키워보니까 아니더라고요."

그녀는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예비교사였다. 충북대 국어교육과 05학번으로 임용을 준비하다가 2009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했고, 줄곧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로 9살 다연, 6살 휘연, 11개월 된 라연을 기르고 있다. 그러던 중 2016년 봄, 둘째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일대를 산책중에 충북새일본부가 여성구직자를 모집하는 모습과 마주쳤다. 얼떨결에 구직신청서를 썼고, 이후 '취업공감' 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업적성검사, MBTI(성격유형검사) 검사 등을 받았다. 이후 새일인턴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일'을 선택한 것이다. 전업주부생활 7년만이었고, 생애 첫 '직장'이었다.

"아이들만 키우다가 일하니까 힘들줄 알았는데 오히려 에너지와 활력을 얻었어요. 출퇴근을 위해 면허 따고 차도 샀죠. '새일인턴 1년'이 제겐 '육아휴직' 같은 시간이었어요."

청주랜드 안에 있는 사회적기업 '청주에듀크리안트'에서 2016년 봄부터 1년간 새일인턴으로 일했다. 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라 자녀들을 어린이집에서 받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녀의 업무는 청주랜드를 찾는 어린이집 아이들을 상대로 기후변화관을 돌면서 기후변화아카데미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제 전공이 교육이었고, 저의 아이들과 같은 또래들을 가르치는 거라 더 수월하고 재밌었어요."

안보화씨가 만드는 자서전의 특징. / 안보화씨 제공<br>
안보화씨가 만드는 자서전의 특징. / 안보화씨 제공

사회적기업에는 안씨를 포함해 6명이 일했다. 모두 경력단절여성이었다.

"배려를 많이 받았어요. 다들 아이 길러본 엄마들이어서 같이 일하면서 이해를 많이 해주셨어요. 다른 직장이었으면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불평불만이 나왔을텐데."

새일인턴을 하면서 '나도 뭐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됐고, 바로 두번째 일자리를 찾았다. 청주시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내수 '장날학교'에서 70~80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문해교실 교사였다. 장이 열리는 5, 10일에 2시간 수업을 하는 것으로, 2017년 1년간 월급 20만~30만원을 받고 일했다. 당시 셋째를 임신중이었다.

"마지막에 어머님들이 직접 쓴 시, 수필, 일기, 시화 등으로 전시회를 열어드렸는데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창업아이템이 나왔죠."

이후 충북새일본부의 추천으로 여성창업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돼 2주간 교육을 듣고 창업아이템을 내 대상을 품에 안게 됐다.

"셋째 출산예정일이 1월 10일이었는데 12월에 만삭의 몸을 이끌고 창업아카데미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내용이 너무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누구나 창업할 수 있어요'로 시작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로 끝났죠."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7년을 접고 '창업'을 통해 '일'과 '가정'을 잡은 안보화 '기억록' 대표는 요즘 집을 사무실 삼아 출판일에 매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셋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창업에 더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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