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해넘이. / 클립아트코리아
해넘이. / 클립아트코리아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는 이맘때면 늘 아쉬움과 회한이 섞인 마음으로 지나온 한 해, 그리고 그간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악한 정치적 다툼과 혼돈, 심각한 민생문제, 범죄 및 안전과 관련된 사회문제, 그리고 학교교육의 부재, 유치원의 문제, 끝없이 추락하는 교권상실에서 비롯된 교육문제 등으로 더욱 우울하고 힘든 한 해를 보낸다. 이제 곧 본격적인 강추위가 시작되고 한해가 마감되고 새로운 한해가 다가올 것이다.

시간을 실은 세월이란 이름의 열차는 자꾸 달려만 간다. 누구도 달려가는 그 기차를 막을 재간이 없기에 그저 실려 갈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살아온 세월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삶의 의미를 구현할 수 있을까? 삶의 어느 길목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추슬러야 할 때가 있다는데 지금이 그 때인 모양이다. 세상만사는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고, 쇠함은 성함으로 돌아간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온다. 춘하추동 사계절이 순환 반복하는 것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인과의 법칙이고 우주의 법칙이다. 멈추고 그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이는 엄중한 자기 성찰과 함께 중도, 중화, 중용, 균형, 그리고 멈춤의 미학과 절제의 덕목을 가진 자만이 가능하다.

빅터 프랑클 (Viktor Emil Frankl)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험을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은 그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가스실에 끌려가면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기도하며 당당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버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석복수행(惜福修行)'을 생각하게 된다. 석복은 바로 '멈춤의 미학'이고 '절제의 덕목'이다. 석복수행이란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낮추어 검소하게 생활하는 수행을 말한다. 그러나 이를 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 멈추고, 버려야 할 적당한 선에서 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는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인 것만 같다. 사상이나 이념, 정권, 부 명예, 심지어 사랑까지 끝장을 보려고 한다.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법이 없다. 수양(修養)과 달관(達觀)을 통한 영적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멈춤(止)이다. 어쩌면 복을 아끼는 석복수행을 통해서 영생의 복록(福祿)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로마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자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분명히 하고 더 이상의 욕망을 내놓지 않는 것이 완전한 삶으로 가는 첩경이라고 한다.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지 않고서 즐겁게 살 수는 없다. 반대로 즐겁게 살지 않으면서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 수는 없다. 그러기에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척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즐겁게 살 수 없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 했는데 복이 다하면 나락(奈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간의 여정에서 일상화된 활동이나 생각들을 수습하여 처리하지 않으면, 털어내야 할 것들을 털어내지 못하면,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의 여정은 힘들어진다. 삶의 무게로 끈질기게 매달려있는 것들은 대체로 미련이거나 회한이거나 미움들이다.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변명을 덧붙일 이유는 없다.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인생길이 힘겨운 이유는 그 무거운 짐들을 버리지 않고 인생 여정에 매달고 가기 때문이다. 털어내고 비워 내야한다. 인생이란 그저 그런 것이다. 어제는 내 생활에 있었던 것들을 오늘은 내 생활에서 없게 해야 한다. 사람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멋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또 다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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