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의 좁쌀 한 톨(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는 말)

한 학기가 지났다. 종강 후에 가장 큰 일은 기말고사와 채점이다. 채점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학생은 일정 수준의 성적을 거두지만 성적이 너무 형편없어 'F'학점을 부여받는 학생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 고민이 크다. 'F'학점을 줄까? 아니면 'D학점이라도 줘서 대학 졸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할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결국 나는 'F'학점을 주는 것으로 결론내리고 말았다.

이 문제는 학생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 역시 이러한 학생이 생기지 않도록 먼저 주의를 기울였어야한다.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이긴 하겠으나,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으나 'F'학점을 받은 학생들과 간단하게 면담을 한다. 면담을 통한 결론은 간단하다. 자신들은 한자에 약하고, 따라서 古文(고문) 수업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기실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약 65% 정도나 된다. 그러나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한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대학에 진학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한자 교육을 받는다.(중어중문학 전공인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그러니 선생이 강의시간에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교육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한국어로 말을 해도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까? 아니 이러한 현상 때문에 어쩌면 우리나라 공교육의 부실을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지난 학기에 蘇東坡(소동파)의 유명한 작품 「赤壁賦(적벽부)」를 강의했다. 「赤壁賦」는 蘇軾(소식)이 王安石(왕안석)의 變法(변법)을 반대하다가 貶謫(폄적)되어 黃州(황주) (단련부사)로 내려가다가 지인들과 赤壁(적벽: 赤壁之戰이 있었던 赤壁이 아님)을 유람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蘇軾은 이 글에서 자신의 자연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거시적 시각에서 대범하게 서술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은 마치 "바다 속에 떨어진 한 알의 곡식(滄海一粟)"처럼 미미한 존재이며, 생명은 몇 시간 밖에 살 수 없는 하루살이처럼 짧기 때문에 모든 功名(공명)은 허무한 것이어서 일대의 영웅이었던 曹操(조조)도 결국 죽음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허나 인간 존재의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라 말한다. 세상 만물을 변화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강물은 늘 새로운 것이지만, 변화하지 않는 입장에서 본다면 강물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그 자리에서 흘러간다는 것이다.

현상을 중심으로 보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원칙을 중심으로 보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蘇軾의 결론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滄海一粟의 가벼운 존재라도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는 일순간마다 변화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나는 나라는 불변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현상과 원칙의 쌍곡선을 그리며 세상을 살다가 가는 그런 존재라는 말이다.

원론으로 다시 돌아 가보자. 세태가 변하여 한자를 멀리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 변화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이제라도 어린 아이들에게 한자의 의미가 담긴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자. 그러면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게 원칙이니까. 원칙이 서면 규칙이 정해진다. 규칙이 정해지면 사회적 효율이 높아진다. 허니 한자를 멀리하는 것과 한자를 가까이 하는 것. 어느 것이 좋을까 고민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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