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성경 민수기에 400년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해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민족 얘기가 나온다. 그들이 살던 이집트 고센 땅에서 목적지인 가나안 까지는 불과 2주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역해서 그 진노로 인해 40년간이나 광야에서 헤매다가 겨우 목적지인 가나안에 도달했고, 처음 이집트를 출발했던 사람들 중 스무 살이 넘었던 사람은 지도자로서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모세를 포함하여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 성년자 중 오로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떠나 바란광야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12지파의 대표 각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다. 그들은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훌륭한 땅이고 과실도 풍성한 곳이지만 이미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강하고 성읍들이 견고해서 도저히 점령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나아가 거주자들이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들이어서 메뚜기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 이길 수 없다는 나쁜 소문을 내는 바람에 사람들이 기가 죽어,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며 종살이 일지언정 이집트로 돌아가 편하게 살고 싶다고 아우성 쳤다. 그러나 12명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점령할 수 있다며 설득하고 담대히 앞장서 나아가 다른 이들이 따르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힘겨웠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한 해 동안도 내 뜻대로만 살지 못했다. 말로는 섬기고 나눈다고 했지만, 오히려 얻어먹고 신세만 졌다. 조그만 실수로 커다란 손해를 보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때로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 것이다, 삶이란.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말로 한해를 회고하지만, 우리 삶을 돌아볼 때 어느 해도 평탄하게 지내온 날이 없다. 후회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다. 잘난 척도 하고 겸손한 척도 했으나 그것이 모두 부질없다. 언젠가 우리는 이 땅에 종언(終焉)을 고해야 할 것이고, 결국은 잊혀질 것이기에. 그렇지만 그 모든 희로애락의 한 해를 돌아보면 이 험난한 시대에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감사하다. 나 같이 보잘 것 없고 비루한 사람도 작은 역할이라도 감당하며 살려진 것이 기적 같다.

두려운 것은 미래다. 사람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새해 더 큰 일 하라고 덕담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꿈, 비전, 희망을 말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념적 갈등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자기 이익을 구하기 위해 입만 열면 다른 사람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고, 북한에 쌀 지원으로 쌀값이 폭등했다든가, 대통령 전용기에 태극기가 사라졌다는 둥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세상, 아무리 정부가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용문제를 비롯해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은 경제, 여기 저기 들려오는 이웃들의 고통스런 소식을 생각하면 일상사가 부담스럽고, 새해 맞이하기가 겁난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그런데 어찌하랴. 우리는 이미 '2018'의 경계를 넘어 '2019'라는 달력 위에 서 있게 되었으니. 각자 감당할 몫을 가지고 살아내라고 이 땅에 던져진 우리. 그 몫은 함부로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될 수도 없다. 왜 더 풍요한 나라, 풍요한 시대에 태어나게 하지 않았느냐고 신을 원망할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 여기 한국 땅에 살고 있으니. 그러니 가야 한다. 지난해의 실수, 실패, 다 잊어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희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매일이 마지막이 될 수 있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려고 했었다는, 지난 해 타계한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을 기억하며, 쓰임 받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어딘들 힘들지 않은 곳이 있으며, 어느 때인들 힘들지 않았던 날이 있었던가. 그러므로 지금, 새로 시작된 새해, 여기가 내 인생 최고의 시간, 최고의 장소임을 감사하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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