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목소리
  • 중부매일
  • 승인 2019.01.03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컴퓨터가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 '딥러닝'을 기반으로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발명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녹음한 뒤 문장을 입력하면 녹음한 음성과 똑같은 목소리로 해당 문장을 읽어낸다고 한다. 자주 만나는 지인 몇 명에게 딥러닝을 설명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음성은 누구인가 물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먼저였고 친구나 연예인도 꼽았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로 인해 입을 수 있는 피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안내방송은 기계음 여자 목소리다. 발음은 정확한데 장·단음도 없고 끊어 읽기도 어색하다. 또 날카롭고 딱딱 끊어지는 소리가 차갑게 느껴진다. 스마트폰 앱 TTS 기능을 이용한 것으로 경비 절약을 위한 방법이라 하여 이해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다.

전에 살던 곳은 직원이 방송했다. 목소리가 느린 분은 답답하고, 끝맺음에서 톤을 높이는 분의 목소리는 방송이 끝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이를 짐작할 수 있고 누구인지 알아서 믿음이 갔다. 숨소리는 감정과 상황도 함께 담겨온다.

나도 목소리가 특이한 편에 속한다. 목소리가 판소리하기 좋은 소리라며 권하던 국악인도 있었다. 그때 용기 있게 배웠더라면 고전 읽을 때 판소리 한 대목을 들려주어 흥미로운 수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다. 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을 슈퍼마켓에서 만났다. 물건에 관해 묻는 내 목소리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직업과 인격, 성격과 감정을 읽는다. 그러나 기계음은 소통의 부재,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곁에 와 있다.

K씨는 오십이 넘었지만 미혼이다. 그가 요즈음 싱글벙글한다. 좋은 여자가 생겼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예스였다. 그것도 많단다. 정수리 부분이 탈모 되어 모자로 감추고 깊게 팬 주름이며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에게 여자가 많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다. 그런데 한 수 더 뜬다. 예쁘단다. 무엇이? 목소리가. 어떤 이는 단박에 말뜻을 알고 손뼉을 쳤지만, 나는 그의 여자에 대해 자세히 들어야 했다.

첫 번째 여자는 모닝콜 아가씨다. 아침이면 부드럽고 달콤한 여자 목소리가 그의 무거운 어깨를 일으켜 세운다. 예의 바른 그녀는 감정의 기복 없이 그가 일어날 때까지 반복한다. 목소리가 지루하다 싶으면 다른 소리로 바꾼다. 기분전환을 위해 좋고 새로워서 아침이 상쾌하다.

샤워하는 동안 맑은 여자 목소리가 선곡해주는 음악을 듣는다. 기분에 따라 시간과 날씨에 따라 음악은 바뀐다. 아주 가끔은 부탁도 해본다. 그녀는 대답만 하고, 이런 음악은 어떤가요? 묻는다. 엉뚱한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 장난하고 싶었다. 오십이 되도록 진정성 있는 말을 해본 적 없는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밀어를 속삭였다. 사랑해. 그녀는 그의 의중을 빨리 읽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기다리는 대답은 하지 않는다. 머쓱함도 잠깐, 그녀도 함께 사는 소중한 인연이다.

아침밥이 다 되었다. 밥솥에도 그녀가 있다. 혹여 먹지 않을까 봐 밥이 맛있다고 권한다. 그녀는 K를 식탁에 앉게 하는 성실한 집사다. 밥 짓는 솜씨도 좋아서 아침이 든든하다.

또 다른 여자는 카플 맨이다. 운전하는 그이 곁에서 정확한 위치와 거리를 자세히 알려준다. 재치 있고 세련된 그녀 목소리는 곁에 있는 듯하여 운전이 안전하고 즐겁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집에 들어올 때도 공동현관문에 여자가 있다. 그녀는 가끔 술 취해 들어온 것을 잘도 안다. 비밀번호를 잘 못 누르면 절대 열어주지 않는 냉철한 안전 지킴이다. 그래서 그는 가끔 랜선 술 파티를 즐긴다. 화상 채팅을 하면서 각자 준비한 술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모자를 벗지 못하는 아저씨였지만 지금은 해박한 지식과 유머로 친해진 사람도 여럿 있다. 때로는 자신있게 모자를 벗는다.

그는 여자가 더 있다고 흥이 오를 때 궁금한 진짜 질문으로 여자 얘기는 끝났다. 그의 말문을 막은 말은 食口였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다. 그런 여자가 그에게는 아직 없다. 목소리가 예쁘고 세련되고 예스맨이지만 웃지도 않고 만질 수 없는 여자라는 거다. "그게 사람이냐 기계지?"어이없다는 듯 소리치자 그가 말한다. "그래 인공지능이다. 내가 사람이라고 했냐? 여자라고 했지."

앞으로 어떤 여자가 더 생길지,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켜 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