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우리에게는 새해를 맞아 덕담을 나누는 아름다운 세시 풍속이 있다. 그중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말이 가장 편하게 쓰는 흔한 말일 것이다.

'복(福)'은 무엇인가? 사전을 보자.

1. 복 2. 간직하다 3. 복을 받다 4. 하늘의 도움 5. 제사에 쓴 고기·술을 의미한다고 쓰여 있다. 복잡하고도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구나 간절하게 원하는 엄청난 무게의 단어이다.

누구나 천복(天福)을 타고 나길 기원하고 사는 동안 인복(人福)이 있네, 없네, 따지다가 '지지리 복도 없다'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급하면 '복권(福券)이라도 당첨되면 행복(幸福)하겠는데' 라며 '복 타령'을 하다가 누군가 죽으면 명복(冥福)을 빈다. 복으로 태어나서 복중에 살다가 죽어서도 축복(祝福)을 받으려고 하니 우리네 삶은 가히 간절하게 만복(萬福)강림을 바라는 기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진실은 '나느 늘 박복(薄福)하다'면서 복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영주 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좋아해 마지않는 복은 보이지 않는 가치이다. 우리의 문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보고 현실에 끌어다 쓰는 문화이기에 크고 수승하다. 태어나면 이미 한 살이니 어머니의 태중에 들어앉는 순간 하나의 생명으로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정부에서는 이런 전통이 복잡하다고 만 나이로 통일하자고 한다. 편리함만을 보자는 것으로 '덕(德)'이 되지 않는다. 복에 걸 맞는 말이 바로 '덕(德)'이다. '덕을 쌓는다.'는 말이 있듯이 덕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가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인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어찌 상대의 눈과 마음에 남지 않겠는가? 최근 들어 일어나는 물의를 일으키는 많은 사건들이 모두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는 복의 정체를 모르는 얕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국민 모두의 부끄러움이 된 모 지방의회의 의원들의 외유중의 추태, 국가대표 선수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성폭행. 자기 회사 직원들에 대한 사장의 인격 모독 갑질,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상실한 부적절한 행태와 언사 등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즉물적인 반응의 반작용들이다.

선조들께서는 그리하지는 않으셨다. 복을 받고자 하염없이 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복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네 원래의 정초덕담은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복 많이 지으세요." 이었다. 선조님들의 마음으로 복(福)을 다시 생각해 보자. 글자의 오른쪽을 보면 위에 하늘(一)이 있고 맨 아래로 밭(田), 곧 땅이 있고 가운데에 사람의 입(口)이 있다. 하늘의 덕으로 땅에서 나는 음식을 내입으로 들어옴을 깊이 아는 것(示)이다. 조합하면 '복(福)'자이다. 그러니 천지인이 하나임을 아는 것이 복이라는 뜻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