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빛바랜 누우런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하얀 쌀밥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은 꽁당 보리밥에 무짠지 반찬이 전부였는데, 기름기 잘잘 흐르는 쌀밥도시락을 먹던 그 날을 잊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유난히 연착이 잦았던 충북선 열차. 연착시간을 알리는 코맹맹이 역무원의 안내방송을 듣고 기차오는 시간을 기다리다보면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허기짐이 꼬르륵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밀려온다. 학교 운동장을 한 걸음에 달려가 벌컥벌컥 수도물을 마시고 다시 또 기차역으로 급하게 뛰어오면 뱃속에서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먹을 것이 부족하였던 그 시절 기차역 근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밀가루 풀빵조차 사 먹을 수 없는 가난 농촌소년 이었다.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때면 사르락 짚불타는 냄새와 밥 익는 구수한 냄새가 어울려 새벽을 깨운다.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고추장. 간장. 묵은지로 삼첩상을 물리면,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부지런히 십리 길을 걸어가야만 기차를 탈 수 있다. 학교근처에 내려야할 때면 장에 가는 사람들과 짐짝, 그리고 통학생과 가방이 뒤엉켜 가방끈이 끊어진 적도 여러 번 이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기차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밤길 십리는 아침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처녀가 한을 품고 죽어 늦은 밤 목 놓아 우는 귀신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 쌍고개를 넘을 때면 쭈빗쭈빗 머리끝이 설 정도다. 하루도 아닌 매일 아침 저녁 그 고개 길을 오르내리며 늦은 밤 집에 도착하면 사립문 열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쓰러지듯 잠이 들곤 했다.

기차통학을 하던 50여 년 전 하교 길 기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들어 내려야할 정거장을 놓치고 화들짝 놀라 무작정 내린 정거장에서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 보니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갔던 먼 친척집이 생각 나 찾아갔다. 해가 기울어 집으로 가기엔 너무 늦었고 날씨 또한 매서운 추위로 하루 밤 친척 집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상황이었다 .

다음 날 잘 사는 친척 집에서 싸 준 도시락은 하얀 쌀 밥 이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점심시간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얇게 펴 넣은 하얀 쌀밥은 네모난 도시락 속에 반 정도 차 있었다. 불평하며 먹던 보리밥 도시락은 통학 길 가방 속에서 이리저리 쓸리고 밥과 반찬이 뒤범벅이 되었어도 '내 새끼 많이 먹으라고, 배고프지 말라고 꾹꾹 눌러 담아주신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윤기나는 하얀 쌀밥 도시락을 먹으며 사춘기 소년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가난을 극복하고 잘 살아야겠다. 창고가 넉넉해야 인심 나듯 쌀밥을 먹되 넉넉하게 베풀며 잘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날 반쪽짜리 쌀 밥 도시락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소년에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갖게 해 준 커다란 반면교사가 된 셈이다.

이경영 수필가

이제는 십리 길 걸어와 기차 통학하던 그 소년이 하얀 쌀밥보다 보리밥이 건강식이라 하여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돌고 도는 세상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 할 줄 아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어릴 적 젖배를 곯았다는 그 소년은 지금도 여전히 밥시간을 놓치거나 상차림이 조금만 늦어지면 허기를 참지 못하고 "여보~ 밥 ~ "을 찾는다. 간식은 간식이고, 밥은 밥이라는 밥식이 남편이다.

하룻밤 재워주고 도시락까지 싸준 배려는 진정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밥 속에 담긴 사랑의 마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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