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이선영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이선영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최근 미국의 한 기업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피자를 만드는 3D 쉐프(3D-Chef)기술을 발표했다. 3D 프린터로 찍어낸 구두가 패션쇼에 오르는가 하면, 이제는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 된 오토바이가 거리를 질주하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치 중세유럽에서 유행했던 연금술이 21세기에 재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 1986년 '입체인쇄술'이라는 특허 출원에서 시작된 3D 프린팅 기술이 속도와 소재, 크기의 한계를 딛고, 4차 혁명시대 성장의 중심기술이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인쇄술의 발전은 늘 시대를 움직여왔다.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다.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금속활자 기술이 서양보다 앞선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의 3D프린팅 기술이 미래 전략산업 분야가 되기까지 많은 산을 넘었듯,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 역시 쉽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속활자 주조 과정은 정교함과의 싸움이다. 밀랍판형을 만들고 어미자 제조와 주형제작 등 정밀하고 치밀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완성된 금속활자를 첫 대면한 고려 인쇄공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인출을 위해 활자 위 먹물을 칠한 인쇄공은 이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최고(最高)인 이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금속활자 면에 묻은 먹물은 가장 표면적이 작은 구 모양을 유지하고자 한다. 풀잎 위 동그랗게 맺힌 물방울과 같이 물 분자 사이의 표면장력이 그 원인이다. 금속으로 만든 활자를 진하고 선명하게 인출하기 위해서는 금속표면에 고르게 먹물을 퍼뜨려야 하는 표면장력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하고 선명한 금속활자를 인쇄하는 것은 고려시대 인쇄공만의 과제가 아니었다. 고인쇄박물관에서 인쇄 체험을 경험한 아이들은 목판본에 비해 금속판본으로 인출한 한지의 먹색이 흐릿하며, 글자의 선명한 정도가 균일하지 않은 이유를 묻곤 하였다. 그 답을 찾고자 초등학교 아이들이 힘을 보탰다.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먹 재료를 찾기 위해 고문서를 뒤졌다. 과학전람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먹 장인을 찾아 전통 먹 제조 방법을 익히고, 소나무부터 동백기름, 돼지비계까지 고려시대 인쇄공이 되어 먹 재료가 됨직한 것들을 태워 그을음을 모았다. 보통의 아교는 소가죽을 고아 그 액체를 고형화한 접착제로 알려져 있지만, 상온에서 굳어버리는 아교를 그을음과 반죽하여 콜로이드 상태의 액체먹을 만들기 위해 72시간 이상의 교반작업에 몰입하기도 하였다. 다음해에는 교사들도 함께 참여했다. 고문헌 파본에서 먹 가루를 긁어 성분을 분석하며, 그 성분과 유사한 옻을 첨가하고, 표면장력을 줄이기 위해 물 대신 발효주를 재료로 먹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매달렸지만, 고인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직지 영인본과 같은 인쇄수준의 결과물은 얻기 힘들었다.

질 높은 금속활자 인쇄본을 얻기 위한 답은 먹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밀납을 이용해 활자를 고르게 조판하는 방법부터, 먹 번짐이 적고 밀도가 높은 도침한지의 사용,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솔로 문지르는 과정까지 그 어느 하나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쉽게 보고 지나쳤던 직지의 진하고 선명한 글자 하나하나에는 다시 재현하지 못할 인쇄공들의 땀이자 최고의 과학이 담겨 있었다.

'활자(活字)'는 살아 움직이는 글자라는 뜻이다. 지식의 대중화를 이끈 금속활자 인쇄술은 단어 그대로 세상을 역동적으로 이끌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금속활자가 탄생하기까지는 인쇄과정에서의 수없는 실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운 최고(最古)의 과학기술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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