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겪어야 松柏의 뜻을 알다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얼마 전, 제주도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함께 갔던 미술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과 찾아간 곳이 2010년 마련된 김정희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추사관'이었다. 문인화의 대표작이 '세한도', 그리고 많은 서적과 서예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같이 갔던 동료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추사의 예술세계에 침잠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김정희 선생의 예술혼과 정신세계를 기리는 추사관에서의 몇 시간은 내 인생을 반추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세한도는 제주도로 귀양갔던 선생님을 두 번이나 찾아온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려줬다고 한다. 멋대로 굽은 소나무 몇 그루 사이에 초막이 덩그러이 자리한 이 그림, 처음에는 그저 동양화 한 폭, 그 이상의 의미는 내게 없었다. 허나 이 그림이 곤경 속에서도 고고한 인품, 자신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담고 있음을 알고 다시 바라보니, 그 초막 안에서 소나무와 대화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지금의 제주도야 세계적 명문 관광지이지만, 그 옛날 한양에서 걷고, 수레와 배 타고 제주도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별로 아는 친지나 친척도 없는 제주도에서 홀로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야 했던 김정희 선생을 생각하니 덜렁 외롭게 서있던 몇 그루 소나무의 의미가 진하게 전해왔다.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던 추사는 제자에게 "모진 추위를 견뎌봐야 松柏(송백)의 강건함을 알고, 심한 더위를 겪어봐야 농부의 수고로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라!"는 격려하려던 것은 아닐까?

누구나 인생에서 한 두 번은 쓴맛을 보기 마련이다.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재주, 삼수를 겪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고, 건강을 잃어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고난을 전기로 삼아 반등하여 새롭고 의미있는 삶을 찾는 것, 아마도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論語(논어)』 「子罕(자한)」篇의 고사가 생각났다.

孔子(공자)가 자신의 弟子(제자) 子罕에 대하여 "子罕만이 다 떨어진 삼베옷을 입고도 여우와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호화로운 옷을 입은 고관대작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지 않을 것이다"라고 높게 평하였다. 子罕이 孔子의 칭찬을 받자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孔子가 하신 말씀을 자꾸 되뇌었다. 그러자 孔子가 子罕에게 "이러한 것은 사람이라면 응당히 그리해야 하는 일이니 너무 자만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최후에 孔子가 의미심장하게 "계절이 추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엄동설한을 지난 연후에야 비로소 松柏(송백)의 녹음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歲寒(세한)! 힘겨운 시절! 시련에 직면해서도 개인의 고상한 品格(품격)과 志操(지조)를 지키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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