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사십여 년 전 겨울, 문교부의 선진교육시찰단으로 가까운 일본과 유럽의 독일을 방문했을 때 흰 셔츠의 검정재킷에 등에 멘 가방과 운동모자(安全帽), 우리가 느끼기는 추운 날씨인데 흰색 스타킹에 검은색 반바지 차림으로 큰길의 신호등 따라 엄마가 아닌 친구의 손을 잡고 당당하게 인파속의 한 시민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패전국민들에게서 생기 넘치는 자립재활의지를 깨닫게 하는 이 장면이 혹독한 압박과 설움을 극복하고 피눈물로 이끌어낸 자주독립을 아직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오금도 못 펴는 우리와는 너무도 큰 격차로 대조가 되어 참으로 씁쓸했다.

앞 동네의 유치원에 가면서도 할머니가 가방을 대신 메다주고, 엄마의 손을 꼭 잡아야 안심하고 발걸음을 떼는 저 아이는 언제쯤 저 혼자 먹이를 찾겠으며, 보살핌의 굴레에서 벗어나 배려를 실천할 수 있을까!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라면 스스로 챙길 수 있는 가방의 무게이고 준비물이니 부모는 자녀와 조금씩 멀리하는 생활로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줘야 하는데.

일과시작 전 수업을 향해 달려가는 자녀를 따라가며 밥을 떠먹이는 엄마에게서 자식은 과잉모정과 오직희생, 자기중심과 인생 도우미(?) 말고 또 무엇을 배울까! 그렇게 나약하게 자란 아이의 후속은 설명을 필요치 않으리라.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할아버지가 소아마비로 걸음이 부자연스런 손자를 앞세우고 손도 안 잡은 채 오리나 되는 학교를 매일 걸어 다닌다. 신작로도 있지만 논둑길의 물고도 건너야 하고, 동구 밖에선 비탈길도 오르내려야 한다. 전쟁에서 아비를 잃고 어미는 팔자 고쳐 떠났으니 조손이 학교를 같이 다닌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손자와 같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한다.

6년 개근에 명문 중학교 차석입학, 서울로 유학해 대학 졸업 전에 고시에 합격한다. 할아버지는 그 소식 듣기 며칠 전에 아들 보러 멀리 떠났고, 거북이등 손으로 고향 지키는 할머니만 고을군수가 된 장애의 손자를 맞는다. 좋다는 혼처 다 놔두고 할머니를 보살피던 배려할 줄 아는 소꿉친구와 결혼한다. 그는 행동으로 사람의 도리와 홀로서는 길을 몸소 가르쳐준 무학의 그 할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단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진 부모들이 애지중지로 자녀를 키우지만 무식한 천연 순수의 자식만큼 사람답지도 못하고, 물어뜯기고 짓밟혀 무딜 대로 무뎌진 재주나 능력으로는 기댈 곳도 못 찾으니 죽음까지도 먼저 떠난 부모가 일러주길 바란단다. 이런 정서로 자라면서 굳어졌으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 방황한다. 밝은 내일이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조상들이 피로 물려준 것이니 어쩌겠는가?'라겠지만, 노력하면 천성도 바꿀 수 있다는데 진정으로 자식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제발 사람답게 살기를 바란다면, 제 구실 하고 살기를 소망한다면, 자식이 귀여우면 여행을 시키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이해한다면, 스스로 깨달아 바른길 찾도록 투자 아끼지 말고 긍정의 세상살이 체험으로 깨닫도록 기회와 장을 만들어 줘야한다.

유치원 가방 메고 다니며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 내겠다는 마음(自立心)을 가지도록 잘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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