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뛰어들었다 정신 잃었는데
부상자 보상규정 없이 자비 치료
천안시민 A씨 "너무한 것 아닌가"

A씨가 산불 진화 후 연기에 질식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 제공
A씨가 산불 진화 후 연기에 질식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 제공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 등산길에 산불을 발견했다. 119신고 후 당신의 대처는?

충남 천안에서 초기진화로 대형 산불을 막은 한 시민이 부상을 당하고도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병원비마저 고스란히 자신이 부담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50)는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10시26분쯤 등산을 하기 위해 태조산(각원사 방향)을 찾았다. 태조산 입구에서 A씨 눈에 들어온 건 산 아래에서 이제 막 시작된 불길이었다. A씨는 119 신고 후 본능적으로 산불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길가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삽을 들고 불길로 뛰어들었다.

A씨는 삽질을 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불이야'라고 외쳤고, A씨의 외침을 들고 뛰어나온 인근 식장주인이 건넨 소화기로 산불을 진화할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천안동남소방서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35분. A씨는 소방대원들이 오는 모습을 본 후 정신을 잃었다. 연기에 의한 질식이었고, A씨는 단국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동남소방서 관계자는 "해당 화재는 신고 접수는 있었지만 피해가 없어 사고로 분류가 되지 않았다"면서 "피해가 없었던 건 A씨의 초기진화가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는 보상은커녕 병원비 17만6천500원마저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일반 시민이 화재를 진화하면서 부상을 당할 경우 보상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소방대원 등에 대해서만, 천안시는 공무원(공제조합) 및 산림관련 고용직원(보험)에 대해서만 피해보상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것.

A씨는 "보상은 둘째 치고 누구 하나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면서, "보상을 원해서 그렇게 행동했던 건 아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은 지워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권오중 천안시의원은 "이번 사건은 큰 불을 사전에 막았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그러나 진화 후 부상을 당한 시민에게 보상의 근거가 없다는 건 부당한 것으로 빠른 시일 안에 관련 조례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