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새해란 다시 삼백예순다섯날의 선물을 받는 것, 벌써 보름의 선물이 지났다. 첫날 희망과 설렘으로 다짐했던 일들은 어데 가고 지난해와 변함없이 고만고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도 스무 살의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이어가고 있다. 해가 바뀌면 스물한 살이 된다고, 스물한 살이면 진짜 어른이 된다고 꿈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이다. 방학이라서 낮과 밤이 바뀐 채 게임을 하고 친구 만나는 일에 집중하는 일상도 변한 건 없다. 나이가 주는 어른이라는 선물을 거창하게 기대했겠지만 하루아침에 불쑥 어른이 되지도 않는다.

스물한 살, 아이들에겐 가장 어른스러운 나이이고, 어른이 되었다고 믿을 나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이다. 시간과 세월을 되돌려 돌아 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 삶의 첫 걸음을 떼어놓고 싶은 나이, 무엇이든 어떤 길이든 선택하고 꿈꿀 수 있는 나이, 새싹의 연두에서 익어가는 초록을 덧입히고 싶은 싱싱한 나이다.

내가 그 나이 때는 무엇을 하였던가.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해 낼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하던 시절.

이십대에는 오십대가 되면 인생을 관조하고 세상일에 달관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나이를 지나고 있는 난 아직도 어설프고 할 일이 많아 종종 거리며 살고 있다. 해가 바뀌었어도 아이들과 해맞이 소원을 빌지도 못했다. 하루 시간 내어 바닷가라도 다녀와야 하는데 일에 쫒기며 사느라 엄마의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닌가 마음만 심란하다.

스물한 살이 되면 완전한 성인이라고 좋아했던 딸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어? 환갑이 낼 모레야?" 내 나이는 생각지도 않은 채 젊다고 생각하며 사는데 환갑이란 말에 공연히 심술이 나서 눈을 흘겼다. 성숙되지 못한 채 한 해 한 해 지나온 시간이 아이를 키웠고 나는 나이를 먹었다. 해(年)를 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살 날수를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세월이 가고 한 생애가 가는구나, 지금도 그러하고 내년에도 같지 않은 시간이지만 같다고 생각되는 시간들을 난 살아낼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살아보는 그 나이의 시간들을.

새해가 되니 부자가 된 듯하다. 많은 날들이 다시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이 하얀 여백을 어떤 일상으로 채워 갈까. 지난해에도 무수히 많을 것 같은 날짜들이 어느 순간 머물다 사라졌다. 흰 여백인 채로 때론 빡빡한 일상의 기억을 남겨두고서. 크고 작은 일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재잘거린다. 가시바늘처럼 날을 뾰족이 세운날도 있고,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뛰어다니던 때도 있고, 너부데데한 호박 같은 삶에 지친 이에게 박하사탕 같은 하루를 선물한 적도 있었다.

살다보면 교과서에서 배운 뺄셈이 덧셈이 될 수도 있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보면 내게 보탬이 되기도 한다.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아이들도 교과서 방식대로 사는 삶이 다 아니란 걸 터득할 테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아직은 어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는 나이 스물한 살. 제 빛깔 제 향기를 머금은 개성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조금 부족하고 서툴더라도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가기를. 새해 첫 날 한 해의 계획을 세워 새해 마중을 하듯, 인생에 성인이 된 스물한 살 첫 단추를 잘 끼웠으면 좋겠다.

오늘이 특별하거나 내일이라고 마냥 희망에 달뜨지 않는 특별한 일 없이 새해의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외모는 세월을 따라 늙었지만 마음은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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