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며칠 전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세종시에 다녀왔다. 음성에 사는 경찰인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내가 음성까지 간 다음 친구 차로 세종시에 함께 갔다.

친구 상덕이와 난 동창이다. 난 늘 상덕이를 보면 경찰은 좀 무서울 것 같단 어릴 적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곤 한다. 상덕이는 착해도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덕이는 무엇이든 주는 걸 참 좋아한다. 예전에는 고구마 농사를 졌다며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귤과 한라봉을 내 차에 실어주었다. 늘 받기만 하던 나도 무언가 상덕이한테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가다가 그만 잊고 말았다.

요즘 잘 먹는 과일은 귤이 아닐까 싶다. 귤은 다른 과일에 비해 쉽게 껍질을 벗겨 먹어 더 손이 가지 않나 싶다. 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주황빛이 참 예쁘다. 한참 바라보면 마음이 환해진다고 할까. 크기에 비해 작은 꼭지부분도 앙증맞다. 반으로 자른 모습도 예쁘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제주에 간 적이 있다. 그때 궁금했던 귤나무를 처음 보았다. 나무에 달린 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무가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그 이후 귤꽃을 사진으로 보았는데 고요함을 주는 하얀 꽃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흔한 귤이지만 어릴 적만 해도 귤은 아주 귀했다. 상자로 사 먹는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아버지가 작은 봉투에 담아 사오시거나 명절날 기차를 타면 그물망에 줄줄이 몇 개 든 귤이 다였다.

어쩌다 귤을 먹게 되면 아껴 먹곤 했다. 정성스레 껍질을 벗긴 후 하나하나 떼어 입안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곤 했다. 처음 귤을 먹었을 때 톡톡 터지는 알갱이의 느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특히 눈 오는 오후나 밤, 이불속에 발을 넣고 까먹던 귤은 최고였다. 한참 귤을 먹다 수북이 쌓인 껍질을 보면 '언제 다 먹었지?' 하는 아쉬움이 늘 들곤 했다. 그래서 몇 개 안 남은 귤은 천천히 먹었다.

다 먹고 난 귤껍질도 버리지 않았다. 누나들은 귤껍질을 손등에 문지르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해서 어찌나 문질러 대는지 아까워 죽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귤차를 조금밖에 못 먹게 되기 때문이다.

귤껍질을 모아 노란 주전자에 물과 함께 넣어 끓였다. 연탄불 위에서 허연 입김을 내다가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 달그락 들썩이면 설렜다.

눈 내리는 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귤차는 황홀했다. 살짝 연둣빛이 감도는 귤차를 마시면 평소 잘 못 쓰는 편지도 시도 술술 잘 써졌다. 꼭 내가 시인이 된 것 같았다. 귤차가 얼마나 귀하고 맛있던지 몇 번 물을 넣어 끓여먹었는지 모른다. 나중엔 아예 맹물 맛만 났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이젠 흔한 귤이 되었지만 내겐 늘 소중한 귤로 남아있다. 집에 와서 상덕이가 준 귤을 까먹었다. 달콤새콤한 게 아주 시원하고 맛있었다. 어릴 적 먹던 그 맛과 똑 같다.

이런 귤처럼 한결 같은 천사표 친구 상덕이가 가까운 음성에 살고 있어 참 좋다. 그래서 카톡으로 "나 막 충주 집에 도착했음. 귤도 잘 먹을 게."라고 보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며칠 상덕이가 준 귤 덕분에 행복할 것 같다. 아, 마음 같아선 하얀 눈이 폴폴 내렸으면 좋겠다.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손톱 밑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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