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우리는 참 자유 충만한 세상에서 산다. 누구는 내면에서 형성한 종교의 자유 때문에 대체복무가 허용되어 군필자의 증오적 표현의 자유를 자극하고, 누구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받고 싶지 않아서 재판을 받다가 도주하기도 하며, 어떤 택시기사는 듣기도 싫은 정치이야기를 피곤해서 죽어가는 승객의 귀에 자유의 이름으로 쏟아 놓기도 한다.

자유는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기도 하고, 나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매우 강력한 논리가 되기도 하며, 동일한 자유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등 그 실체는 매우 변화무쌍하기도 하다. 물론 때로는 공권력에 의해 제한되거나 심지어 박탈당할 수 있는 가련한 개념이기도 하다.

근대 인권에 대한 논의의 시발이 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로크나 루소와 같은 근대 철학자들은 이른바 천부인권사상이라는 것을 주창하였는데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평화로울 것만 같은 자유라는 단어가 단두대에서 누군가의 목을 자르는 혁명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고, 미국이라는 엄청난 국가가 전쟁을 통해 독립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자유는 태어나면서부터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임에도 폭력적인 권력에 의해 박탈되어 왔다고 생각한 민중들이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시민혁명과 독립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자유가 거창해 보이고, 어마어마한 철학이 담겨있을 것 같지만, 실은 자유는 '무엇이든 내 맘대로 행동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거칠게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행동과 관련있는 아무 말에 "자유"라는 말만 붙이면 그 자체가 바로 하늘이 준 자유이고, 헌법에서 말하는 인권이고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 있다. 어떤 취객이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던 내 자유!"라고 말할 때에도 그가 말한 자유는 시민혁명과 미국독립운동의 기초를 제공한 자유의 거장인 로크나 루소가 말한 자유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개인의 자유가 끝간데 모르고 확대되다가 다른 이의 자유의 영역과 맞닿는 순간 문제는 발생한다. 개인간의 자유가 맞닿는 접선을 정리할 객관적인 규칙이 없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더욱 팽창시키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에 몰두할 것이고 홉스는 이를 자연상태라 불렀다.

그리고 무한 경쟁의 고단함이 있는 자연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는 규칙을 정해야 한다. 그것을 군주가 정하면 군주제가 되고,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한다면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고, 사회의 공동선이 그 기준을 제시한다면 사회주의가 될 것이다. 그 경계 설정기준이나 설정주체에 따라 세상 모든 정치형태가 설명된다. 자유의 경계설정이 국가의 존재이유이고, 이를 통해 최대다수가 최대로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국민이 선거로 구성한 의회가 제정하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따라 자유가 충돌하는 경계를 헌법에 합치하도록 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의회는 국민들간의 자유가 맞닿는 곳을 살피면서 어떻게 접점을 정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를 판단하여야 하고 이를 법률로 정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게다가 그 경계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은 상황에 따라 변하므로 기존의 선은 계속 수정되어야 하고,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자유의 영역(예컨대 블록체인, 무인자동차 기술, 공유경제 등)이 발견되어 새로 생긴 접촉면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새로운 선을 새로 그어야 할 것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은 자기들 잇속 챙길 자유만 열심히 행사하고 있다. 법률이 없거나 법이 제 기능을 못하는 영역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며 고단하게 사는 일반 시민의 행복하게 살 자유에 대하여도 생각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