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오늘날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날마다 말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날이 새면 말로써 하루가 시작되고, 말로써 하루해가 저무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말은 자기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음성 언어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반드시 상대방이 있다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말이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다면, 이것은 큰 죄악이다. 유익한 말만 다하여도 안개와 같은 인생에서 짧을 진데 어쩌자고 모이면 시기, 질투, 욕설부터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한다. 은혜로운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한다'고 말이다.

이처럼 말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말은 두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순기능적인 역할과 역기능적인 역할이 있다. 순기능적인 역할은 말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꿈을 주고 사랑을 주고 자존감을 신장시켜 삶의 활력소가 되는가 하면, 역기능적인 것은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힘을 잃고 소망을 잃고 실망을 주고 미래를 어둡게 하며 어깨를 축 쳐지게 만들어 버리게 한다.

그래서 성서(聖書)에는 '혀를 놀려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입술을 놀려 거짓말을 하지 말라. 또한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말하고, 입술에 스스로 옭아 매인다'라고 구약에 말하고 있어 태초부터 사람의 말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세치의 혓바닥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지만 그 세치의 혀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순자(荀子)는 '좋은 말은 시원한 물보다 목마름을 축여준다'라고 했다. 문제는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양식과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때로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보다 남을 헐뜯는 말 즉 험담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물론 이유야 나름대로 있겠지만 잘못한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때와 장소를 가려서 당사자에게 직접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상대방을 존경하는 것이요, 함께 살아가는 지혜요, 상생의 길이다.

대개 남을 헐뜯는 말은 이런식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특별히 너한테만 털어놓는 건데, 혹은 웬만하면 내가 이런 얘기 안 하는 데'하는 말과 함께 세상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런 험담이 얼마안가서 다시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쩌면 상대의 단점만을 발견하기 위하여 몸부림친다는 것은 스스로 내면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어느 혹자는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할 것 10가지 중 하나로 말의 영향력을 일컬어 '칼로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갑니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런가하면 어느 책을 보니 이렇게 쓰여져 있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言)에는 묘한 뜻이 숨어 있다. 두(二) 번 생각한 다름에야 천천히 입(口)을 열어야 비로소 말(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값진 말들인가. 모름지기 우리 모두 기해년 새해에는 말의 소중함을 재인식하여 아름다운 말, 남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 자존감을 세워주는 말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될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행복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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