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눈에 커튼이 드리운 것 같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하루 종일 책에 빠졌더니 눈이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호소를 하는 것이다. 퇴직을 하고 활자 중독증 운운하며 눈을 혹사했더니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망막에 이상이 생겨 안과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나이를 한 살 더하고도 건강을 자신하며 자제를 못하니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까운가 보다. 남편은 취미생활도 좋지만 분서갱유를 아느냐며 넌지시 심경을 토로하기까지 한다. 쇠도 오래 쓰면 닳는데.

기해년 새해에는 취미와 건강의 균형을 유지해야지 하면서도 나쁜 게 아니라는 핑계로 작심삼일을 초래했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건강 상태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지금 어디가 아픈 것은 그만큼 그 부분을 많이 쓰고 관리를 잘못 했다는 것이다. 50대 이후 품질에 가장 편차가 심한 게 인간이다."라는 라디오 멘트가 맞춤하게 나온다. 날 두고 하는 소리 같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없지 싶어 읽는 것 쓰는 것을 의식적으로 멀리 밀어놓았다.

그런데 안과에서 기다리며 오감이 일어서는 듯한 시구를 발견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바람이 날개가 꺾인 채 날지 못하는 건 꿈을 잃었기 때문이다.'라는 생경하면서 튀는 시어를 발견하고 이런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인의 창의성이 부러웠다. 이내 마중물이 되어 잠시 잃어버리고 있던 저 밑의 꿈이 되살아난다. 그 시에 매료되어 음미를 하며 반복을 하니 좀 긴 시이지만 암송이 되었다. 전파하고픈 마음으로 모임에서 청하지 않아도 좋은 시가 있다고 들려주었다. 시들어 가던 꿈이 물을 만나니 갈라진 논바닥의 벼처럼 싱싱하게 초록을 뽐낸다.

시인은 '수많은 꿈을 접었다 하더라도 꿈 하나를 더 꾸고 있다면 그게 바로 삶의 이유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그래, 내게도 수많은 꿈이 있었지.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노력을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공직을 퇴직하면서 꿈도 잊어버려야 한다.'라는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나 자신을 나이라는 체면치레의 굴레 속에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꿈에는 정년이 없으니 내 꿈나무는 속앓이를 하면서 이제나저제나 주인이 물 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을 것이다.

2015년 유엔은 평생 연령 기준을 재정립해서 발표했다. 유엔은 이를 통해 0세부터 17세까지는 미성년, 18세에서 65세까지 청년, 66세에서 79세 까지는 중년, 80세에서 99세까지는 노년, 그리고 100세 이상은 장수 세대라고 규정했다. 영양 섭취와 위생 상태가 좋아지고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산다. 70세, 80세가 넘어서도 청년기의 인지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자신이 나이 들었다고 움츠러들 게 아니라 65세까지는 여전히 청년이라 생각하고 고령화 사회에서 무엇에든 도전하며 활기차게 살아가자는 것이 취지라고 한다. 그 기준대로라면 나는 아직 청년이다.

무서리 내릴 때의 국화처럼 짧은 햇살을 아끼는 나이니 염치없다거나 노욕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엄살을 부린 것은 아닌지.

핑곗거리를 찾으며 지레 뒷방 늙은이를 자처한 꼴이다.

나름대로 열매를 맺은 꿈, 생각만 하고 멀어져 간 산재한 꿈들을 톺아본다.

버킷리스트에 오를 나의 꿈은 무엇인가.

건강을 지키는 것은 크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꿈이고, 글 쓰는 사람이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것은 평이할 수 있지만 인지상정인 꿈이다. 시인처럼 짧은 언어로 울림을 주지 못하지만 조금 길어도 더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글 다운 글이었으면 좋겠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글 잘 쓰는데 왕도는 없다고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는 것이 금과옥조다. 조정래 작가는 다독 40%, 다상량 40%, 다작 20%가 경험상 이상적이라고 한다. 그것을 참고삼아 건강한 눈도 지키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꿈의 난로에 다시 불을 지펴야겠다. 중용의 딜레마 속에서 불쏘시개에 불이 붙는다.

일과 휴식의 적당한 균형이 건강을 유지시킨다는 것을 잊지 않고 꿈 하나를 이루고 싶은 것이 기해년의 꿈이다.

 

 

 

 

 

※ 이영희 약력

▶한맥문학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 청풍문학회장 역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단장 역임
▶현재 청주시 1인 1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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