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주목하지 말고 유목하라.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삶의 여백이 생기고 생명의 가치를 느낀다. 더 큰 세상을 향해 새로운 시선으로 창조의 씨앗을 뿌려라. 죽음을 뛰어넘어라. 삶은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이다. 검색하고 사색하고 탐색하라. 이 모든 극적인 삶을 즐겨라. 빛은 강물처럼 흐르니 이 또한 지나가는 것, 후회하지 말고 미련 갖지 말며 오늘 하루를 앙가슴 뛰게 살아라."

크리에이터 이어령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내 가슴은 뜨거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먹먹해 여러 날 앓아야 했다. 당신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담는 것이 벅찼다. 엊그제, 새 해 인사 겸 찾아뵀을 때는 되우 쓸쓸했다. 노병의 눈빛은 불타고 있었지만, 당신의 언어는 빛나고 있었지만 뒤태는 슴슴했다.

선생님은 연초에 언론을 통해 암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그래서 더욱 긴장감이 돌았다. 지역의 예술인 몇 명이 함께 했다. 당신께서는 맑은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만나자마자 말의 성찬이 쏟아졌다. 투병 중인데도 가슴을 때리고 울리며 웃게하는 말씀의 시간이 세 시간 넘게 계속됐다.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인 것을, 이제야 비로소 꽃이 예쁜 줄 알겠더라. 그렇지만 생명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 항암치료를 거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암도 내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딸 민아를 먼저 보낸 것이 마음에 큰 상처였다. 평생을 글 쓰면서 창조의 지평을 열며 달려왔지만 아픔이 작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하루하루가 기적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뛰어넘어라. 간절해야 이루어진다."

당신께서는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두려움과 긴장, 경쟁과 부조화의 연속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두려움을 용기로, 긴장을 여유로 풀 수 있는 미적인 시간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문화이고 창조이며 통섭과 융합적 사고다. 경제적 선진국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적 선진국임을 웅변했다. 불모의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위기는 곧 기회,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 현자의 역설적인 태도 말이다.

"우리의 삶은 이별의 연속이다. 탯줄을 끊으면서 엄마와 이별하며 삶이 시작되지 않는가. 삶은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이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서도 죽음도 함께 있지 않은가.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삶이 더 농밀해진다.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엄연해진다."

실제로 당신께서는 평생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를 끝없이 탐구하고 항해하며 만남과 이별, 생성과 소멸의 경계에서 창조의 씨앗을 뿌렸다. 젓가락, 보자기, 가위바위보, 아리랑 등 한국의 문화원형에 숨어있는 무수한 콘텐츠를 발굴했다. 지의 최전선에서 생명문화와 생명자본을 외쳤다. 책으로 펴내고 스토리로 구성하고 축제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몸도 마음도 긴장의 근육을 풀어야 한다. 유연한 태도로 세상을 보면 사물이 달리 보인다. 그 곳에서 움트는 생명의 소리, 대지의 소리를 담아라. 가슴뛰는 사랑을 하라. 에디슨이 되지 말고 테슬라가 되어라. 인공지능을 전쟁에 사용하면 재앙이 올 것이고 문화에 사용하면 삶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당신께서는 청주에 대한 애정과 가능성을 얘기했다. 직지, 태교신기, 소로리볍씨, 두꺼비, 대청호 한지 등 생명문화의 보고(寶庫)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다가 없는 내륙의 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주사람들은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유연하지만 강직하며 정감있고 창의적이라며 칭찬했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한다. 내 평생의 기적을 정리하고 책으로 남기고 싶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더 큰 기적을 만들면 좋겠다." 아, 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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