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잠을 청해 보지만 가는 해를 보내기가 못내 아쉬웠나 잠은 십리 밖으로 달아났다.

잡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척거리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거리를 찾았다.

초롱초롱해지는 눈망울과 맑아지는 머리를 달래 보려고 일 년 동안 봐온 마을의 장부를 펼쳐들고 결산서를 작성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책상 앞에 앉았다. 높이 얹어둔 계산기를 꺼내려고 까치발을 떼는 순간 무룹 안쪽에서 "우짖끈"하는 소리와 함께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그리곤 꼼짝달싹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한참을 왼발에 힘을 싣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통증을 참고 주저앉아서 자리 속으로 파고들어가 누웠다. 식구들이 깰까봐 혼자 속을 끓이다가 잠이 들었던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움직이던 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만 있을 뿐 도무지 발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식구들에게 간밤의 일을 전하니 우리 집은 비상사태가 되었다. 정형외과를 찾아가 피를 뽑고, 여러번의 사진을 촬영하고 진단 결과는 뼈조각과 함께 무룹연골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어이없이 당한 간밤의 사고로 아들딸들이 놀라서, 서울에 있는 딸이 한걸음에 달려오고 막내는 젖먹이를 안고 입원실로 모여들었다. 아들은 출근도 못하고 안절부절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밤새 안녕이라더니 평화스러운 우리 집에 이 무슨 변고인지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잘 먹고 진통제 주사로 아프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하여 화장실 출입이 어려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해도 큰아이는 일주일을 꼬박 간호를 하고 올라갔다.

아들딸들의 효도를 받으며 잔소리를 들었다. 하마 같은 엄마 살을 빼야 하겠다는 한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운전을 하지 말고 걸어 다니라는 둥, 약기운에 늘어져 병실에서 잠만 자면 잠잔다고 야단, 어쩌란 말인지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헤메고 있다.

아들딸들을 물리치고 고집을 부려 퇴원을 했다. 이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정초부터 사고를 친 나는 부끄러워 숨고만 싶은데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초청장에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건다. 바쁜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더러는 솔직하게 사정을 이야기도 하면서 그렇게 20여일이 흘러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중을 들어 주며 지내던 남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느닷없이 "죽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뇌경색으로 올해로 꼭 십년을 살고 있다. 어린애처럼 오직 내 남자로 두문불출 잘 살았는데 이젠 거꾸로 내 수발을 들다가 하는 소리다.

그 소리에 난 뜨끔 했다. 저러다 우울증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한 가지 병도 아니고 식도암까지 겹쳐 다 깨진 항아리 위하듯 오직 당신만을 섬기던 내가 움직이지 못하니 그 심중이 오죽하면 저런 소리를 할까.

나이 들어 병들면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그 리듬이 깨져 또 다른 걱정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편치 않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난 남편의 두 손을 꼭 잡고 위로를 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질 꺼라고, 그때 경로당도 모시고 가고 둘이서 외식도 하러 가자고 달래고 있다.

다리가 나으면 시민공원 무심천도 같이 걷자고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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