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고, 비 맞는 사람을 배려하려면 우산을 씌워주지 말고 같이 비를 맞아주란다. 방학을 맞은 유초중의 손자들과 같이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려고 '어둠 속의 동행'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체험활동은 시작에서 끝까지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100분 동안 오직 촉각과 안내자(navigator)의 멘트를 들으면서 횡단보도 건너기를 시작으로 영화 관람까지를 체험한다. 눈을 뜨거나 감아도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다.

백주에 길거리에서 눈을 가리고 지팡이만으로 시각장애 체험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각장애인 일상생활체험이다. 일단 어둠속 공간으로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어둠 속에서 일행 5~6명이 동행하는 것이다. 일행을 놓칠세라 손을 잡거나 옷을 잡기도 하지만, 할 수 있으면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행동할 것을 권한다.

주어진 맹인용 지팡이에 의지해 점자유도불럭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목적지인 2㎞ 떨어진 곳에 있는 영화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시내버스보다 안전하다는 지하철을 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발의 촉감과 지팡이의 느낌으로 점자유도불럭을 따라 출입문의 위치를 확인하고 입구에서 기다린다. 열차가 도착할 때의 안전은 점자유도불럭이 지켜준다.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고 보행에 불편을 주어 귀찮게만 느꼈던 점자유도불럭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틀림없는 생명지킴이다.

식당과 영화관에서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맹인용(점자판) 컴퓨터로 음식도 주문하고, 매표도 하고, 지정석도 찾아야한다. 눈을 가리거나 어둠 속에서 타이핑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 자판은 머릿속에 선해도 손의 위치가 부정확하여 계속 오타만 음성으로 알려준다. 당황한다.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자리를 잡아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주문이 되고 발권이 된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방송이 나온다. 점자 식권을 가지고 카운터를 찾아간다. 식판을 받아가지고 오다가 지팡이를 놓쳐서 한참을 헤매다가 발에 걸린 지팡이를 집어 들고서 식탁을 찾는다. 수저와 포크로 음식을 찾아 밥, 국, 김치로 식사를 한다. 긴장이 되니 달그락거리기만 할뿐 맛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물을 마시니 식판 반납이 걱정인데, 다행히 그냥 놔두란다.

극장에 들어가서 지정석을 찾다가 벽의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친다. 헛발을 디뎌 넘어져 의자에 어깨를 찍는다. 아이들은 울기도 한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무성영화의 나레이터 해설을 들으면서 영화를 감상한다. 맹인들은 도대체 이 답답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에 콧등이 시큰하더니 눈물이 핑 돈다. 정상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미술관을 방문하여 명화를 감상한다. 보이지도 않는 그림을 촉감으로 선과 색깔을 느끼고, 조형물을 손으로 만지며 상상으로 모양을 감상한다.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가 생각난다. 상상의 화폭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미술관에서 명화감상의 해설을 듣는 기분이다. 과정종료 후 휴게실로 나오니 느낌이 다양하다.

역지사지로 시각장애자의 입장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고, 앞으로는 약자를 배려하면서 더 정직하게 살아가야겠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매우 유익하고 보람된 체험이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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