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가끔 성당의 어린이 주일미사에 참석할 때가 있다. 맑은 새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좋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올 수 있어서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그날 신부님의 강론은 한파 속에 쓰러진 노인을 구한 중학생 세 명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학교 기말고사 시험이 있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노인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입고 있던 패딩까지 벗어 노인의 몸을 덮어 주며 집에까지 업어 귀가시킨 훈훈한 이야기였다.

쓰러진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외면하였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지 않았기에 중학생들의 선행이 더 값지고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부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를 질문으로 던지셨다.

강론을 들으며 묵직하게 체증처럼 걸려있는 일이 다시 생각났다.

이번 겨울은 예년에 비해 춥지 않아서인지 각 업체에서 겨울을 대비해 미리 만들어둔 패딩이 많이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패딩뿐만이 아니라 대체로 겨울옷 판매가 부진하여 일찌감치 세일을 하는 곳이 많으니 얼굴도 볼 겸 한번 다녀가라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바람도 쏘일 겸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강남 지하상가로 함께 쇼핑을 갔다.

즐비하게 늘어선 옷들과 그 사이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만족시켜줄 물건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모처럼의 나들이에 들떠서 서울깍쟁이가 다된 친구의 흥정을 대견해하며 따라 다녔다. 친구 덕에 몇 가지 만족한 쇼핑을 하고 또 다른 구경거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흠칫 발걸음이 멈출 정도로 시선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저기 사람 맞지?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니?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다시 고개를 돌리는 나를 잡아 끈 것은 친구였다.

시선이 비껴간 곳에 스치듯 지나온 곳에는 상인이 먹고 내다 놓은 점심 잔반들을 허겁지겁 깨끗이 긁어먹는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요즘은 흔히 볼 수 없었던 광경을 서울 한복판에서 본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서울에서는 간간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옮기면서도 내내 마음은 그곳에 맴돌았다.

한 끼라도 마음 편히 따뜻한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식사 값이라도 건네고 오지 못한 안타까움도 들었다. 어쩌다 노숙자의 길로 들어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뜻 나눔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내면 깊숙이에서 자책으로 올라오며 마음이 불편해졌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먹거리 방송이 넘쳐나는 요즘에도 절실한 배고픔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 것 같았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물질적인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하겠지만 정신적인 가난 구제는 우리 모두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언론이 학생들의 선행을 널리 알려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그들의 마음에 당겨진 선행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아울러 좋은 뉴스로 기사를 접한 신부님이 강론으로 이끌어낸 중학생 세 명의 이야기는 주일학교 친구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을 것이다.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머무는 시간들이 많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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