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며칠후면 세밑 그리고 설날이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을 세밑이라 한다.

세밑에는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차례음식을 준비하고,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않는 수세(守歲)를 한다.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하여 '눈썹 세는 날' 이라고도 하는데 잠든사람 눈썹에다 밀가루를 하얗게 칠해서 깨어나면 골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송구영신의 해갈이 통과의례이다.

"섣달 그믐밤이 되면 서글퍼지는 이유에 대해 논하라."

1616년 광해군이 낸 감상적인 과거시험 문제에 대해 당대의 문인 이명한은 이렇게 답을 냈다.

"묶은 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 아침까지 앉아있는 것이요, 날이 밝아오면 더 늙는것이 슬퍼서 술에 취해 근심을 잊는 것입니다. 세월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것, 그저 일평생 학문에 힘써 밤늦도록 꼿꼿이 앉아 마음을 한곳에 모으면 됩니다."

'섣달 그믐날은 부지깽이도 꿈틀거린다.'는 속담이 있듯이,여자들은 설 맞이를 위해 일손이 모자라고 몹시 바쁜데도, 남자들은 그저 감상에 빠져 술과함께 유유자적하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새날이 밝아오면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설빔을 입고,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떡국으로 세찬을 먹고, 성묘를 다녀온 후 다함께 어울려 민속놀이를 즐겼다.

설빔은 설날에 새옷으로 갈아입는 옷으로 아이들에게는 '꽃길만 걸어라'는 뜻으로 알록달록하게 곱게 만든 때때옷을 해 입혔는데, 이 설빔은 대보름날까지 갈아입지 않는 풍속이 있었다.

가가례(家家禮, 각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풍속)에 따라 정성을 담아 차례를 지낸 후에는 웃어른께 세배를 하는데, 옛날에는 덕담을 많이 했다하나, 요즈음에는 명절증후군의 원인이 되기도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하지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집 안가니?', '올해는 취직해야지?', '대학 어디 갈거니?', '공부 열심히해라', '좋은 소식(아기) 없니?', '아이들은 반에서 몇등하니?'

그야말로 이런말은 덕담이 아니라 부담(腐談, 쓸모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세배드리는 사람은, 세배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에 다른말은 안해도 되나, 어른의 덕담후에 "과세(설을 쇰) 안녕하십니까?" 정도가 좋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등의 명령형 보다는 기원을 담은 인사말이 더 좋다 하겠다.

특히, 백수는 100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99세를 가리키는 말이니 만큼 "백수를 누리세요"보다는 시류에 맞춰 "천수(120세)를 누리세요"라고 하는게 나을 듯 싶다.

먼 곳의 어른께는 정월 15일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충북중앙도서관 김규완 관장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세배가 끝나면 건강한 한해를 기원하는 뜻에서 떡국으로 세찬을 먹는데, 떡국은 '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 하여 첨세병(添歲餠)이라 불렸다. 예전에 떡국을 끓일때 꿩고기를 넣어 만들었는데, 꿩고기가 없는 경우에는 닭고기를 넣고 끓여서 '뀡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설은 고향에서 쇤다'는 속담이 있는데, 부모있는 사람은 반드시 고향에 가서 설을 쇠야한다는 말이다.

작은 설날인 세밑에는 아들 며느리 친손주들이 찾아오고, 큰 설날인 정월 초하루에는 딸 사위 외손주들이 찾아와주니 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올 설에는 '우리가족 BAND'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화만사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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