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정미 충남 금산주재

민간인 묘라고 하기엔 봉분이 컸다.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상석을 살펴봤으나 어떤 문구도 찾을 수 없었다. 동네 주민들은 구설이 염려돼 어떤 글도 새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 중부대 인근에 위치한 태조 태실 원위치에는 민간인 묘가 조성돼 있다. 현재 토지소유주가 당시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75년에 쓴 어머니 묘라는 정도가 회자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 자리라는 것을 알고도 토지를 매입했는지,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10년 후 태실 석물을 반출하려고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합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했으니 묘를 쓸 수는 있다. 다만, 태실 석물임을 알고도 훼손하거나 반출하려 했다면 이는 두고두고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금산군이 태조 태실 원위치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이 반출위기의 석물을 500m 인근으로 옮겨 복원한 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31호로 지정받았으나 보물 승격 심의 과정에서 태실의 위치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김정미 사회·경제부 차장.<br>
김정미 사회·경제부 차장.

핵심은 원위치 복원. 금산군이 부지매입비와 연구용역비까지 편성했지만 토지소유주와의 접촉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민들까지 나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한 이후 함경도에 있던 태를 옮겨 묻은 곳이니 풍수에 밝은 지관이 확보한 최고 길지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태실에 묘를 쓴 이후 집안이 번성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주민들의 시선이다. 이는 비문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묘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당당하게 이름조차 밝힐 수 없는 처지. 주민들과 많은 답사객들로 부터 고인이 받았을 숱한 원성과 아쉬움을 생각하니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곧 설 명절이다. 성묘를 위해 고인의 묘를 찾을 후손들을 생각하니 문득 궁금해진다.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귀하게 되어 세상에 이름을 빛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평안하신지. 명당보다 중요한 건 '지나온 혹은 살아갈 삶 자체'라는 누군가의 충고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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