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를 드리면서
세배를 드리면서
  • 중부매일
  • 승인 2019.01.3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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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역년으로 새해를 맞을 때나 민속명절 설날에 세배를 올리면서 드리는 덕담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공통용어로 자리 잡은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6.25 동란으로 피란을 다녀오고서 설날을 맞아 차례를 마치고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렸을 때의 일이다.

먼저, 최고령의 글방선생님이신 삼당숙님께 세배를 하니 '아버지 함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아버지란 말만 알아듣고 손으로 가리키니 '아버지 이름도 모르니 차례올린 조상님도 모르겠구나. 아우가 많이 가르쳐야겠네.'

동네 어른들께도 세배를 드리란다. 전쟁을 치르면서 둘째 형님처럼 전사했거나 피란길에 가족을 잃은 이들이 있었기에 그 위로차원에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꼭 세배를 드리란다.

동네의 꼬마들이 설빔도 없이 또래끼리 대여섯 명씩 세배꾼이 되어 이웃을 돌아가며 세배를 한다. 어떤 집에서는 형들의 세배꾼들과 겹쳤는데, 그 중 무학의 한 형이 세배를 하고 앉더니 '어르신, 만수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세배를 받은 할아버지가 '세배를 받았으니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지, 모두들 부모님 잘 모시고 건강들 해라.' '고맙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세배꾼들이니 공부 잘하라며 숫자대로 밤, 대추, 전, 반에 반반쪽짜리 사과, 배, 곶감 등을 모둠으로 세찬(歲饌)을 내준다. 단술(食醯)과 가래떡에 조청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오늘의 세뱃돈이리라.

그때 덕담으로 들은 말 중에서 '올해는 꼭 평란(平亂)이 되어 너희들이 군대 가서 전사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던 소원이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작은 형님의 유해가 돌아와 장례를 치른 지 며칠 안 되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소원을 간절히 빌어준 친구 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내 손자가 최전방에서 초소를 지키고 있는데도 그 꿈은 아직이다.

누구든지 연초에 만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 담아서 보내는 이의 간절한 소망 복에 받는 이의 진정어린 고마운 마음 복이 조화를 이루면 더불어 지내는 한해가 아무 탈 없이 뜻한 대로 거두며 새로운 복을 아름답게 지을 것이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그러기에 설날 아침엔 부부가 먼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절로 세배를 하고, 다음에 자녀가 부모에게, 그리고 형제자매간에, 이웃에 세배를 하는 것이리라.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로 터를 잡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실천이니 이어지는 모든 일이 일마다 대박이오, 연년이 풍년이고, 주변이 배려하니 나눔 복을 담 너머 이웃에도 넘겨주며, 하늘이 보살피니 대를 이어 거룩한 영광이다,

입에 발린 지나가는 빈 인사말에도 받는 이에 따라선 이해관계로 순간의 무게가 실리기도 하지만, 마음을 우려낸 정의 향기가 묻어나지 않으면 철부지나 비렁뱅이도 속지 않는다. 순수를 이탈한 세배 돈의 액수와 선물의 양이나 질은 마음의 공(念佛)을 잃어 잿밥으로 눈길 돌리니 그 줄에 매달려 빙빙 돌다 정신 잃는다.

'떡국은 먹었니?'하면서 질화로의 짚불에 가래떡을 구워주던 그 친구 어머니의 저승꽃 핀 손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콧등이 시큰하면서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차례를 지낸 후 떡국을 끓여 이웃과 나누면서 세배하던 때가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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