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 공주 - '천년고찰 마곡사'
주말N 공주 - '천년고찰 마곡사'
  • 이병인 기자
  • 승인 2019.02.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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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자장율사 창간 설화… 질그릇 처럼 편안
승려 은신 우국의 한 달랜 '백범 김구 명상의 길'

[중부매일 이병인 기자] 공주 마곡사는 '독립운동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은신을 하며 우국의 한을 달랜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7년 공주 마곡사의 '솔바람 길'을 '6월 걷기 여행길'로 선정한 바 있다.

이곳이 백범 김구선생이 젊은 시절 승려가 되어 은신생활을 할 때 이 길을 산책하며 우국(憂國)의 한을 달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에 이 길을 '백범 명상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마곡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화를 간직한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지만 거대 관광사찰들처럼 번잡하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해야 할까. 소박한 질그릇 같은 진중함과 이웃집 같은 편안함이 묻어나는 절이다.

마곡사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긴 겨울을 지나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신록이 우거지는 마곡의 봄에 홀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춘마곡'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마곡사'란 절 이름은 법문을 듣고 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니, 그 모습이 마치 삼이 서 있는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곡사는 뒤로는 국사봉(392m), 서쪽으로는 옥녀봉(361m), 동쪽으로는 태화산(613m)에 포근하게 안겨 있다.

국사봉에서 발원한 마곡천은 절집을 관통해 만곡을 이루며 흐른다.

마곡사는 산봉우리들 사이로 청계수가 흐르는 이른바 '연화부수형'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마곡사 터를 두고 도선대사는 '천만년 오래도록 절이 들어앉아 있을 큰 터이자 삼재가 들지 못하는 곳', '유구와 마곡 두 냇가 사이는 천 사람의 목숨을 살릴 만한 곳'이라 했다.

조선 명종 시대의 천문학자 격암 남사고는 '유구마곡 양수지간은 만인의 생명을 살릴 만한 곳'이라며 기근이나 병란의 염려가 없는 십승지로 꼽았다.

마곡사는 사찰을 관통하는 개울을 경계로 수행공간인 남원과 교화공간인 북원으로 나뉘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원에는 중심 전각인 영산전 외에 홍성루와 선방인 수선사, 요사인 매화당 그리고 명부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전(보물 제800호)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1650년경 중수), 세조가 남긴 현판이 남아 있다.

마곡사는 북방화소(금강산 유점사), 경산화소(수락산 흥국사)와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남방화소의 본거지로, 금호당 약효와 송광사 봉린과 갑사의 보응, 송광사의 일섭과 석정으로 이어지는 마곡사 화맥의 거점이다.

남방화소의 본거지답게 마곡사 불전들의 벽면에는 17~20세기에 그려진 불화와 인물화 및 산수화들이 가득하다.

대광보전, 대웅보전 등에 그려진 영산회상도, 삼장보살도(동국대 박물관 보관), 칠성불화, 수월백의관음보살도, 나한도, 신중화, 금강역사도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대광보전의 뒤쪽 벽면에 그려진 수월백의관음보살도는 압권이다. 대광보전과 영산전의 신중화는 마곡사 화맥의 계보를 잇는 금호당 약효의 작품이라니 놓칠 수 없다.

영산전 현판은 세조의 친필이며, 대광보전, 심검당, 심검당 옆의 마곡사 현판은 각각 당대 최고의 서필가인 표암 강세황, 송하 조윤형,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공주 마곡사는 '독립운동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은신을 하며 우국의 한을 달랜 곳이다.

김구선생은 1897년 사형이 선고되어 집행 직전에 고종임금의 특사가 내려져 집행이 정지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석방되지 않자 이듬해 탈출을 하고 만다. 김구가 탈옥하자 전국에 경계망이 퍼졌고 몸집이 장대하여 어디 은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전라도, 경상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마곡사가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 1898년 2월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마곡사에서는 김구선생을 따뜻이 맞이했으며 본전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거처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김구선생은 마곡사 하은 스님에게서 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원종(圓宗).

공주 마곡사 '솔바람 길'
공주 마곡사 '솔바람 길'

'백범 명상의 길' 약 200m쯤 되는 계곡 언덕의 바위는 지금도 스님이 되기 위해 삭발을 하던 자리가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시간이 가면서 신분노출의 위험이 커지자 8개월쯤 있다가 평양 인근에 있는 절로 옮겨 중국 상해로 갈 때까지 은신생활을 했다.

일제하에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백범 김구선생. 1946년 8월 13일 해방 이듬해 그는 승려생활을 했던 마곡사를 못 잊어 후에 부통령이 된 이시영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인근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특히 이때 마곡사 방문 기념으로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7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푸른 모습으로 무성하게 자라 마치 김구선생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1949년 6월 26일 경고장에서 안두희가 쏜 총을 맞고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마곡사는 그를 기려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고 '백범 명상의 길'은 오늘도 이곳을 걷는 이에게 백범의 애국심을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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