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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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해맑게 웃으며 품에 안기는 손자가 사랑스러워 추위도 잊고 놀이터로 장난감매장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등줄기에서 땀이 촉촉이 배어 나온다.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어 보석보다 귀한 손자를 안겨준 며느리가 고맙기만 하다.

민족 대명절인 설도 지났다. 양력으로 보나 음력으로 보나 황금돼지의 해로 육학년 졸업반 아홉수이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가 되다 보니 살짝 걱정되지만, 졸업이라는 아쉬움보다 아홉수의 행운을 기대하는지 마음은 평온하다.

아홉수라는 것은 나이의 끝수에 아홉의 숫자가 든 해로 아홉수에는 신변에 재앙이 오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등 불행이 따른다는 전례의 풍설이 있어, 예로부터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선조들이 살아오면서 얻어온 조심과 경계라는 지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홉수를 꺼리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7을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다. 7을 신성시하며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 이유는 나라마다 다르나, 러키 세븐(Lucky seven)이 국어사전에까지 등록된 것을 보면, 7이란 숫자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7이란 숫자보다 아홉수인 9가 행운을 주는 것 같다. 스물아홉 정월에 결혼하고, 섣달에 허니문 베이비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을 보면. 게다가 아홉수가 드는 해마다 승진을 하지 않으면 영전을 하였고, 가족들도 그 어느 해보다도 건강하고 평안하니 기쁨과 보람이 충만했다고 볼 수 있다. 결혼할 때 주위에서 아홉수라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우였다.

행운은 이어져 쉰아홉에 꿈에 그리던 서기관 승진, 그것도 교육청 산하 여성 행정직 공무원으로는 처음이었다. 공직생활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고, 나 하나의 영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명의 여성 공무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 보람과 긍지가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아홉수의 행운은 내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알차고 보람차게 했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아홉수의 행운을 학수고대한다. 결혼 적령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결혼 생각도 않는 딸이 하루빨리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기에.

요즈음 젊은이들은 결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 입장에선 자녀들이 결혼하여 아이 낳고, 오손도손 알콩달콩 사는 모습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독신주의자도 아니면서,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마이동풍인 자녀들 때문에 가슴앓이하는 부모들이 많다. 능력이 있어도 구속되기 싫다며 회피하는가 하면,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다며 애간장을 태운다.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을 즐기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처음부터 완벽이란 게 있을 수 없으니 살면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살아가면 좋으련만 만남조차 꺼리니 부모 입장에선 답답하기 그지없다. 나 역시 답답한 마음에 허황한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아홉수의 행운을 기다린다.

어려운 경제 여건 때문에 삼포 세대, 오포 세대, N포세대란 말까지 나왔다. 하루속히 나라 경제가 활성화되어, 일자리 창출과 서민경제가 되살아나 한숨짓고 있는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한다. 그러나 경제가 그리 밝지는 않다고 하니 걱정이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취직하기도 힘들지만, 개인사업 하는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업하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니 휴일도 없이 하루 14시간∼15시간 근무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현상 유지하기 어렵단다. 곱게 자란 아이가 휴일도 없이 매일 장시간 일하느라 힘들 텐데, 엄마 걱정할까 봐 내색도 하지 않는다. 병이라도 날까 봐 속이 타들어 가면서도, 당차고 똑소리 나게 운영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2018년 유행어 설문 조사 결과 1위가 '소확행'이었다. '소확행'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갓 구운 빵을 맛있게 먹으면서 느끼는 만족감,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옷을 볼 때 느끼는 기쁨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따사로운 햇살이 참으로 곱고 눈부시다. 벌써 봄이 오는지 담벼락 밑에 새싹이 파릇하게 돋아나고, 해당화 꽃망울이 나날이 커진다. 머지않아 봄꽃들이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다. 혼자 사업하느라 '소확행'이나 뜰 안에 피고 지는 꽃도 감상할 여유조차 없는 딸, 기해년엔 좋은 사람 만나 삶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독일의 시성 괴테는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했고,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도 '가정의 단란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라고 했다. 하루속히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홉수의 행운을 기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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