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김대중 정부는 엄청난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공공투자사업의 무분별한 남발을 억제하고 효율성을 사전에 평가하기 위해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도입했다. 꼭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우후죽순처럼 지역 국제공항들이 세워졌다. 예천공항, 양양공항, 울진공항이 만들어졌지만 세금을 낭비하는 애물단지가 되었으며 예천공항은 폐쇄되어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울진공항은 취항하는 민항기가 없어 비행훈련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양양공항은 제주노선 몇 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신세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재정관리 제도라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강 사업'뿐만 아니라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사업 항목을 확장하면서 68개의 토건사업이 예타 면제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대학 사회에서도 4대강 사업으로 각종 지원 예산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많은 교수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분야라고 안 그랬겠는가. 만약 그런 재정을 4차산업혁명을 대비한 교육에 반 만 투자했어도 지금의 한국은 훨씬 나아져 있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총사업비 24조원 규모의 23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발표했다. 말들이 많다. 작년에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진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의해 조직된 평가단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1,2년 늦더라도 제대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시급성을 구실로 사업을 강행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예타 면제 방식을 동원한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4대강 사업 추진을 반대한 전문가로서 문재인 정부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는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정부의 공공투자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정부 예산을 편성하기 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의 예산을 편성하기 위하여 미리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평가 항목도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 있다.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균형발전(25∼35%)이 평가 대상으로 들어 있다.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평가가 높긴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 사업추진 효과와 고용효과 등이 평가되는 정책성 평가에 문제가 없고 지역 낙후도 개선, 고용 유발 효과, 지역 경제 파급 효과 등 지역 개발에 미치는 요인을 평가하는 지역균형발전 평가 부문에 대한 기준을 조금만 상향 조정한다면 평가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하면 몇 년씩 소요되는 점 등을 고려하여 대상 사업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에서 상향 조정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대한 긍정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류연국 한국교통대교수
류연국 한국교통대교수

정부가 23개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한다는 발표에 많은 이들이 오만과 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지난 정권과는 다를 거라고 믿었던 자신들을 의심하며 차마 문재인 정부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식의 토건사업은 안한다고 했는데 이를 따라하는 꼴이니 '적폐로 비판해온 이명박 정부를 답습하는 꼴'이라는 경실련의 성명이 와 닿는 것은 왜일까.

지금 우리의 사회적 상황이 어렵다 해도 면밀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졸속으로 단기적 성과를 노린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권의 토건사업을 답습하는 듯이 토건사업들을 밀어붙여서야 되겠는가. 닮지 말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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