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여물목에서
전환의 여물목에서
  • 중부매일
  • 승인 2019.02.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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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백세시대에 무엇이 몸에 좋다고 방송에 한번 알려지면 농가 재배품목이 달라질 정도다. 솜씨 좋은 주부들은 하수오. 헛개나무. 개똥숙. 오디. 블루베리. 여주…, 갖가지 밑반찬 만들기나 효소 담그기로 일손이 바빠진다. 이웃집 이장님도 개똥쑥을 키우며 따듯한 쑥차 한번 드셔보라며 내 놓는다. 그만큼 몸에 좋다는 건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건강한 노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끊일 줄 모른다.

어느덧 나도 백세 인생 전환의 여물목 앞에 섰다. 연년생 딸 둘을 키우며 육아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초보엄마 시절, 이웃집 언니는 나를 참 많이 도와주었다. 아이들 씻기기. 청소하기. 장보기, 음식 만들기. 심지어는 육아에 지치고 힘들어 잠이 부족한 나를 위해 애기 봐 줄 동안 잠깐 눈 붙이라며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봐 주었을 정도였으니 "그 집 유모냐?"는 질투 섞인 이웃들 비아냥거림에도 무한사랑을 주신 언니를 우리 아이들은 천사 이모라 불렀다.

언니는 인생 중반기에 새 아파트를 얻어 대전의 새 집으로 행복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린 헤어지게 되었다. 가을 무렵 천사이모가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다. 원체 작은 체구에 마른 몸 이었지만 꼬챙이처럼 말라있는 천사 이모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재생불량성빈혈로 혈소판 수혈을 하느라 온 몸이 피멍자국이 가득했다. 그 날 헤어지며 "다음 주 또 올게요. 샬롬!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라는 뜻 알죠?", "응 알아…" 일주일이 채 못 되어 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천사 이모가 키워 준 잠든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우리 부부는 늦은 밤 입원병실을 향해 달렸다. 의식이 없는 채 숨만 쉬고 환자 머리맡에는 찬송가가 울리고 가족들은 모두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가만 다가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잡고 지난 주 마지막 나누었던 인사를 다시 했다. 언니는 백세 인생 중반에 그렇게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어 내 마음 속에, 우리 아이들 기억 속에 지금도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앞만 보고 달리다 덜컥 브레이크가 걸려 돌아보면 이미 몸 어딘가는 망가져 있는 것이니, 건강을 돌아 볼 나이다.

얼마 전 한 선배가 "나는 내 인생의 가을을 즐긴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겨울을 준비한다."며 "자기는 어때?" 물었을 때 '난 아직 여름이에요' 오십대 마지막 계절을 보내며 아직 여름이라고 못내 우기던 나는 내심 이미 가을을 느끼고 있었음에도 억지를 부렸던 것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속사람이듯 들꽃 같은 꾸밈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질박한 항아리 같이 변하지 않는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 할 수 있는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는 것은 애써 난 척 하지 않고도 내 속의 것을 나눌 수 있는 겸손과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 함께 해 온 인생의 동역자들이 만들어준 그늘 밑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의 가을을 겸허히 맞이하고 싶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 온 전환의 여울목에서 이제는 저만치 떨어져 가까이 있는 것들을 멀리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조금씩 겨울을 준비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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