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설날은 정월 초하루이다. 예전에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내내 설이었다. 어쩌면 묵은세배를 다니는 섣달그믐부터 설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설과 보름사이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의미로 다양한 행사가 치러진다.

어른이 되면서 할 일이 많기도 하고 바쁜 일상 탓일까. 요즘은 설날이 다가와도 예전처럼 마음이 설레지 않는다. 해마다 설날은 오지만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어렸을 적에는 하루하루 손꼽으며 설빔을 기대하고 차례 상에 올린 과자라도 먹으려고 다과 방을 기웃거렸었다. 언니들이 입던 한복을 꺼내 입고 동네 어른들에게 친구들과 세배를 다녔었다. 한복을 어설프게 입고 율동을 곁들여 노래를 하면 음식을 내 주시며 덕담을 해 주시던 어르신들. 만수무강 하시라고 큰 절 올렸지만 지금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

정월대보름, 새해에 비로소 만월을 맞는 날. 달은 그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보름달만큼 원형을 갖춘 것이 또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는 천체 가운데 달처럼 완벽한 것은 없다.

보름 전날 해거름에는 오곡밥에 호박고지, 시래기,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등 마른 나물로 만든 아홉 가지 반찬을 해 먹었다. 작년에는 몇 가지 나물을 해서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었다. 네다섯 가지 나물을 주고받았는데 겹치는 나물이 없어서 서로 웃었었다.

어머니는 수수와 쌀가루에 팥고물을 켜켜이 넣고 시루떡을 찌셨다. 부뚜막, 장독대, 우물, 광, 화장실 등에 떡을 갖다놓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비손하셨다. 그날 밤 우리는 모였다. 소쿠리를 들고 달밤에 동네 한 바퀴 돌면 집집마다 떡을 나누어주었다. 친구 집 사랑방에 모여 모양도, 맛도 다른 시루떡을 먹으며 놀던 그 시절.

보름날 새벽에 밤, 잣, 호두, 땅콩, 은행 등을 깨물면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며 부럼 깨기를 했었다. 귀밝이술이라고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기도 했다. 고샅에 나가 처음 만나는 이에게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하고 더위를 판다. 세 사람에게 더위를 팔면 여름 내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더위 파는 것을 모르고 얼떨결에 대답하곤 씩씩대기도 했었다.

방죽에서 썰매를 타고 연을 날리기도 하다가 초저녁이 되면 동네 뒷산을 올라갔다.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한 해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빌었다. 달이 어찌나 밝던지 사방이 환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뒷산에 조그만 굴이 있는데 그 앞에서 망우리를 돌렸다. 깡통에 구멍을 뚫은 다음 전깃줄로 손잡이를 만들어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피웠다. 깡통 안에서 불이 타오르면 환한 달빛 아래에서 둥그런 빨간 꽃들이 피어난 듯 돌아간다. 이웃동네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하고 서로 경쟁이 붙기도 하였다. 자칫 잘못해서 불통이 튀어 나일론이던 친구 잠바에 순식간에 불이 붙어 혼줄 나던 기억도 새롭다.

해마다 청주 박물관에서는 제기차기, 윷놀이, 팽이치기, 투호던지기 같은 행사들이 열려 각종 세시풍속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올해는 보름달을 마중하며 마음속에 소원을 달에게 빌어볼까. 정원대보름 풍습은 많이 변했지만 달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둥그런 달도 곧 숨이 빠질 테다. 늘 원형으로 있으면 식상할 텐데 연속적이면서도 반복적인 차고 기욺이 있어 더 돋보인다.

나이 듦일까? 은은한 달빛이 좋고 어릴 적 정원대보름 추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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