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안전인증은 안전경영·안심사회 시작

[중부매일 임정기 기자] 지난 2014년 304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고는 대한민국의 고속성장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참사였다.

그날의 악몽은 장성요양원(21명 사망), 제천스포츠타운(29명 사망), 밀양세종병원 화재(47명 사망)로 옮겨 붙었다. 이들 화재는 모두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 그대로 보여준 인재였다.

달갑지 않은 화두 안전(安全).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있다. 충북 청주의 지역언론인으로 시작해 경향신문 세월호사고 특별취재팀장을 거쳐 '안전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한 사단법인 한국안전인증원(KISC) 김창영 이사장(50)을 최근 서울 용산한강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 '안전'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다

▶ 늘 하던 일,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을 내려놓고 생소한 것을 선택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운명이랄까. 경향신문 세월호 사고 특별취재팀장을 맡으면서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왜'라는 의문을 수없이 던지며 고민했다. 행정안전부와 국민안전처 출입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한국안전인증원 비상임이사에 선임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전임 이사장이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작고해 2015년 '자의반 타의반' 정년이 보장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임기 3년의 제5대 이사장에 취임한 뒤 이사회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해 줘 지난 2018년 연임됐다.

◇ 한국안전인증원은 어떤 곳인가

▶ 한국안전인증원은 지난 1999년 23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에서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태동했다. 정부, 학계, 기업의 안전연구소 등으로부터 '화재예방을 선도할 민간 기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시작됐다. 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이 기획해 2002년 행정자치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아 문을 열었고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현재는 감독관청이 변경된 소방청 허가 제1호 사단법인이다. 2020년에 개원 20주년을 맞는다.

◇ 주력 사업인 '공간안전인증'이란

▶ 공간안전인증(Safety Zone-Certi)은 법적의무사항이 아닌 '임의인증'이다. 서류 몇 장으로 심사 한 뒤 도장을 찍어 주는 그런 인증이 아니다.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이 걸린다. 건물과 공장에 대한 방재안전시설과 안전경영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한 뒤 일정기준 이상일 경우 인증서(유효기간 3년)가 발급되는 국내 유일의 제도다. 공간안전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사업장의 안전상태가 완벽한 수준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혜택' 앞세운 인증은 추진 안해

▶ 공간안전인증평가 대상은 공장, 발전소, 사무용건물, 호텔, 리조트, 백화점, 할인점, 물류창고, 전시관, 스포츠센터, 경기장, 대학교, 종합병원 등을 망라한다. 심지어 공원도 해당된다. 울타리가 있는 특정공간에 대해 안전을 보증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안전인증원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비롯해 300여개 사업장을 평가했다. 공간안전인증을 획득한 사업장은 소방관서가 실시하는 '소방특별조사'에서 제외되거나 매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종합정밀점검'면제 혜택도 주어진다.

하지만 한국안전인증원은 '혜택'을 앞세워 인증을 추진하지 않는다. 기업 내부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리스크 헤징(Risk Hedging)'을 전문기관인 인증원이 컨설팅하는 시스템이다. 형식적인 소방안전 점검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우수소방대상물 발굴을 통해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시설, 설비, 건축에 대한 안전성 확보로 기업의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선진소방안전기법을 기업에 전파하고 있다. 관(官) 주도의 법에 의한 강제가 아닌, 기업의 자발적인 의지로 인증평가가 진행된다. 안전시설물 보완을 통해 소방산업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혜택'부터 문의하는 고객은 정중하게 사양한다. 평가비용을 납부한 뒤 깐깐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탈락한 곳도 매년 30%에 달한다. 재난없는 안전기업을 목표로 하는 공간안전인증을 획득했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자부해도 손색이 없다.

◇ 제천·밀양화재 청와대에 예방대책 보고

▶ 취임 일성으로 인증원을 국내 최고의 화재예방분야 최고의 기술 전문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국내 최고의 엔지니어로 평가 받는 소방기술사 2명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해 공간안전연구소를 설립했다.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 역시 이사장의 '강권'에 못이겨 주경야독 끝에 소방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영리법인도 아닌 사단법인이 소방기술사 3명을 보유한 것 자체가 안전업계 뉴스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2016년에 국내 최고층 건축물인 서울 롯데월드타워(123층·555m) '제연(制燃) TAB(Testing Adjusting Balancing)' 주관 기관에 선정돼 기술력을 인증 받았다. '화재위험 평가 기법'에 대한 특허도 획득, 기술전문기관이라는 위상도 확립했다. 제천 스포츠타운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 후에는 청와대에 화재예방 대책을 보고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안전대상 사무국 18년째 운영

▶ 한국안전인증원은 잘 몰라도 '대한민국안전대상(Korea Safety Award)'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해로 제18회를 맞는 안전대상은 서비스, 공공서비스, 에너지, 건설, 제조, 운수창고통신 등 우수기업상 6개 분야에서 진행된다. 또 개인, 단체, 우수제품, 소방공무원 특별상 4개분야, UCC와 웹툰 공모전으로 열린다. 3월에 공모를 시작해 6개월간의 엄격한 현장심사를 거쳐 매년 11월에 대통령상 4개, 국무총리상 4개, 행정안전부장관상 15개, 소방청장상 18개를 시상한다. 규모와 권위에서 국내 최고의 안전분야 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소방공무원 수상자 18명에게 1계급 특진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안전인증원은 소방청이 주최하는 대한민국안전대상 운영 사무국을 18년째 운영하고 있다. 또 취임 후 사무국에 인터넷신문 '세이프타임즈'를 운영하는 미디어팀을 만들었다. 세이프타임즈(www.safetimes.co.kr)는 시민과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로 운영된다. 2015년 창간 후 전국의 시민을 대상으로 '잎새뜨기 생존수영 교육'을 실시해 큰 반향을 얻었다.

◇ 가장 모범적인 사단법인 경영이 목표

▶ 이사장에 취임하던 2015년, 사무국에 지인들이 오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회의실 하나 없는 사무국과 작은 이사장 방이 고작이었다. 많지도 않은 직원 3명에 대한 급여를 주는 것 조차 벅찼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왜 힘들어 하는지 지금도 실감하고 있다. 지금은 임직원 18명에 회의실도 마련하고, 월급날 머리가 아프지 않을 정도가 됐다. 매출이 많으면 비영리 법인이 장사를 한다는 소리를 들을 거 같고, 너무 적으면 불쌍하게 생각할 거 같아서 비공개다. 퇴직급여충당금을 제외하고는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정도경영'에 충실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단법인을 경영하는 것이 목표다.

◇ 한 건의 '부실인증'이나 사고도 없어

▶ 근심과 걱정이 더 늘었다. 언론사에 근무할 때는 사고나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몇 명이 사망하는지와 피해 규모에 관심이 있었다. 규모에 따라 기사 크기가 달라지기에 현장을 가야할지,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했다. 지금은 그런 사고가 나면 인증원이 관리하는 기업인지 고객사 명단 수첩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 다행히 개원후 단 한 건의 '부실인증'이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는 3월 공간안전교육센터 오픈을 준비 중이다. 최고의 안전전문가를 초빙해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교육사업이 연착륙하면 안전인증과 안전연구, 안전미디어, 안전교육의 상호 보완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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