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전쟁기술과 생존수단이었던 무예가 오늘날 부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스토리는 단연 무협소설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무협(武俠)이란 '무예가 뛰어난 협객(俠客)'을 말하는 것으로, 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에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판타지를 소재로 한 장르를 일컫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무협영화는 오랜 수련과 단련을 통해 연마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내공의 힘과 이 힘을 병장기 등의 도구를 통해 외부의 무력(武力)으로 발산하는 외공의 힘을 대중적 기호에 맞게 가공해서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무협영화는 내외공 수련의 과정이나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변화를 주요한 테마로 삼고 있다. 동양판타지로서 무협은 영웅이 탄생하기까지의 수련의 과정을 통해 내외공을 성장시키는 것이 주요한 테마로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무협영화는 1960년대 허리우드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이소룡의 영화를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장르다. 이소룡은 기존 허리우드의 액션을 크게 변화시킨 인물이다. 이소룡의 새로운 액션과 다양한 액션장면은 기존 액션영화의 흐름을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와호장룡'은 영화사적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무예가 가지고 있는 문화콘텐츠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무예액션영화에는 무예를 소재로한 영화도 있다. 특정 무예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무예의 수련인구와 각국의 보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권도영화로는 1973년 이소룡이 등장하는 '생과 사', 1980년의 '소권' 등이 시작했고, 한국합기도는 1973년 작품인 '흑연비수' 등이 있으며, 우슈와 쿵푸영화는 중국에서 1925년작인 '훙샤(紅俠)'가 최초의 무협영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1898년을 기점으로 무사(武士)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등장하였고, 1920년대와 1930년대 부터는 대중예술로 발전했다.

우리도 무예액션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있다. 한국액션영화를 개척한 인물이면서 아시아액션영화의 스승으로 불리고 있는 정창화 감독이다. 그는 국내보다는 허리우드와 홍콩에서 더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다. 1928년 충북 진천출신인 그는 1954년 '최후의 유혹'으로 데뷔했고, 1967년 '황혼의 검객'을 흥행시키면서 1967년 쇼브러더스에 스카우트돼 10년 넘게 홍콩에서 활동했다. 그는 1968년 이전 홍콩영화사 연구물에 자주 등장한다. 그의 대표작인 1972년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원제 '철인' 또는 '천하제일권'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영화다. 미국 닉슨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미국에서 개봉되어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용쟁호투'가 제작되는데 공헌하기도 했다.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홍콩영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이 당시 경쟁작이 '사운드오브 뮤직'과 '대부'였다.

허건식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오는 9월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과 함께 국제무예액션영화제가 개최된다. 이 영화제를 앞두고 지난 1월 충주에서 열린 프리영화제는 영화계에 큰 호응을 얻어냈다. 정적인 기존 영화제와는 달리 무예와 액션의 동적인 주제가 영화제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무예액션영화제는 2016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도 기획된 바 있는데 당시 미국에 있던 정창화 감독이 총감독으로 확실시 되었다. 하지만 예산 등을 확보되지 않아 개최되지 못했다. 올해 영화제 개최가 확정된 시점에서 정감독은 1928년생으로 90이 넘는 고령임에도 이 영화제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물론, 홍콩과 허리우드의 액션영화 개척자였던 정감독이 이번 영화제에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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