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정월 대보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곡밥에 9가지 나물과 고등어와 김을 먹는 날로 어린 시절부터 기다려지는 보름 명절이었다.

붉은 팥고물을 넣고 시루떡을 쪄 보름달이 떠오르는 시간에 맞추어 시루 째 장독대 지석 항아리 앞에 놓고 시어머니께선 자손과 집안의 평화와 소망을 비시곤 했었다. 떡을 한 시루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찰떡, 호박고지와 감 말린 것을 넣고 5섯개의 크고 작은 시루에 쪄 치성을 드리셨다. 그 정성은 종가 집 맏며느리로서 의무처럼 토속신앙으로 대물림을 했다.

캐톨릭 신자인 난 환경이 너무 다른 이 광경을 바라보며 느낀 점이 참으로 많았다. 세월이 한참지난 지금 돌이켜 보니 아들을 오형제나 두시고 임씨 종가의 장손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시는 모습이었다. 맏동서도 똑같은 길을 걷다 가셨다. 이제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사라져 가는 풍경이다.

왜 보름 명절을 남정네는 집 밖에서 세어야 좋다는 말이 생겨났는지 돌이켜보니 세상과 소통하여 새해 새 계획을 세우라는 뜻이 담긴 것이 아닌가 싶다.

여자는 나물을 뜯고 남자들은 나무를 9짐이나 하라니 농사지을 채비를 서두르라는 깊은 뜻과 시기가 중요함을 이르는 말인 듯하다.

마을마다 청년들은 복조리를 사다 묵어서 집집마다 담 넘어로 복을 빌며 던졌다. 열나흘달과 함께 어우러져 골목길을 누비던 추억이 새롭다. 웃마을에서는 윷놀이를 준비하고, 아랫말은 노래자랑을 하기 위하여 무대를 만들던 일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보름달처럼 떠오른다.

한복 색동저고리와 때때옷을 입고 머리에 댕기드리고 널뛰고 그네 뛰던 정월 대보름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기던 명절중의 명절이었다.

열나흩 날은 일찍 자면 눈썹이 쉰다고 밤새도록 떼로 모여 깔깔 거리며 집집마다 밥을 얻어다 화롯불에 비벼먹던 추억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들이었던가.

보름날 아침 어른들은 머리맡에 부럼이래야 농사지은 땅콩이나 밤, 셈베이나 사탕을 사다 놓고 눈뜨자마자 "아이코 브스럼"하며 깨물던 일이며 누구든지 아는 척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하며 더위 팔던 일들이 기억나시나요.

집안 어른들 순으로 소반에 안주를 곁드려 '귀 밝기 술'을 한 모금씩 마셨던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빠르게 화살처럼 날아와 이제 우리 아이들한테 엣 이야기처럼 들려주어야 하는 추억담이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던가 보름이 지나면 떡국과 만두를 빗어 정성드려 끓인 떡국을 한그릇씩 나누워 먹던 인심이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어디선가 축원을 비는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록 가난하여 배고프던 시절이었지만 끈끈한 사랑과 정이 넘치는 풍경들이었다.

시골 마을인 우리강서2동은 주민자치에서 각 직능단체 회원들과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아직은 농촌동이고 까치내 문암 생태 공원이 있는 강서 2동 주민들은 끈끈한 정과 사랑이 넘친다. 까치내 가는 길의 능수버들이 봄바람에 춤을 추고 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 손잡고 하상도로를 산책하듯 아름다운 강서2동으로 거듭 나기를 축원하는 농악놀이가 곁드려진 멋진 척사 대회가 성황리에 치루워질 수 있도록 천지신명께 빌어본다.

지난 가을 냉장 보관 해놓은 나물들을 꺼내서 따끈한 물에 담가 놓았다. 아주까리잎과 무청 시래기를 가마솥에 불을 집히고 삶는다. 경로당 책임을 맡은 난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준비해서 보름날 어르신들의 먹거리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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