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vs. '작품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세요.'
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 기획전 '레디컬 아트(radical art)'

왼쪽부터 류병학, 작품을 제작한 안시형 작가, 목원대 허구영 교수, 대전 홀스톤갤러리 김주태 관장. 

청주시립미술관 홍명섭 관장은 새해 포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19년 청주시립미술관은 지역미술사를 연차적으로 정리해 나가면서도 우리나라 미술계의 담론을 이끌어가는 기획전들을 마련해 미술관의 전국적 위상을 제고해 나가고자 합니다." <본지 2019년 1월 27일자 '청주시립미술관 2019년 전시·행사 계획'> 그 첫 포문을 2월 14일 청주시립미술관의 분관인 오창관에서 시작했다. 오창관은 오창호수도서관의 실내전시관 뿐만 아니라 테라스 형식으로 만들어진 야외조각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주시립미술관은 야외조각장 이외에 그동안 방치됐던 화단들, 그리고 도서관 1층 로비 등에 도서관의 특성에 맞는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지난해 겨울 박기원, 박정기, 안시형 등 3명의 작가들을 초대해 지난달 말 작품설치를 끝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레디컬 아트(Radical Art)' 도록에 실릴 평론에서 그 3명의 작가를 '레디컬 아티스트'로 명명하고, 그들의 작품을 '급진적인 작품'으로 간주했다. 그는 그 점을 논증하기 위해 무려 원고지 만장이 넘는 분량의 평론을 썼다. 그의 평론은 홍 관장이 '우리나라 미술계의 담론을 이끌어가는 기획전'이라고 주장한 것을 마치 증명하듯 보였다. 평론을 쓴 류병학 미술평론가를 만났다. / 편집자
 

▶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의 '레디컬 아트'가 전시 타이틀만큼 야심찬 기획전인 것 같다. 당신은 오창호수도서관 안팎에 설치된 공공미술에 대해 '급진적인(radical)' 공공미술이라고 평가했다. 왜인가?

-박기원의 '미로정원'은 이것이 나무토막인지 작품인지 헷갈리는 20미터의 기다란 목재 25개로 구성돼 있다. 안시형의 일명 '스타워즈 레고'는 레고 장난감인지 작품인지 모호하게 보인다. 박정기의 일명 '책탑'은 책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길이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책 형태들을 20미터 높이로 쌓아올린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작품들은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금기를 마치 비웃듯 "작품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세요"라고 속삭인다.
 

▶당신은 도서관 2층에 자리잡은 오창관 전시공간에 전시된 '레디컬 아트' 작품들 역시 급진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다.

-오창관 실내 전시공간에 전시된 박기원, 박정기, 안시형의 작품들은 더 당황스럽게 한다. 가로 20미터와 세로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오창관 전시장은 온통 노랑/검정색의 사선2도 안전테이프로 도배돼 있다. 전시장 벽면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테이프로 'X' 형태를 수없이 반복한 박기원의 '엑스(X)'는 관객의 시선을 압도해 버린다. 사선들이 수없이 교차돼 있어 율동적인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오창관 전시공간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받침대 3개가 놓여져 있다. 붉은 받침대 위에는 마치 붉은 산처럼 보이는 박기원의 '뜨거운 물'이 설치돼 있다. 그런데 그 붉은 산처럼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쓰레기봉투에 사용되는 투명비닐이란 점이다. 백색 받침대 위에는 돌과 못 그리고 구리선 또한 장난감들로 연출된 안시형의 일명 '잃어버린 레디-메이드를 찾아서'가 진열돼 있다. 마지막으로 노랑 받침대 위에는 특이하게 제작된 미니어처들로 이루어진 박정기의 일명 '건축적 조각'이 전시돼 있다. 그들의 작품들을 본다면 "이것이 작품인가 물건인가?"라는 의문점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들은 '레디컬 아트'라고 할 수 있다.
 

▶'레디컬 아트' 하면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남자용) 소변기'를 '작품(샘)'으로 내놓은 '에센셜 뒤샹'이 떠오른다.

-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의 '레디컬 아트'는 말씀하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에센셜 뒤샹' 이후의 급진적인 미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의 '레디컬 아트' 평론을 읽어보니 뒤샹뿐만 아니라 뒤샹의 '후예'들 작품들도 줄줄이 소환해 놓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조차 하지 못한 담론으로 읽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에센셜 뒤샹'은 일본에서 기획한 전시를 수입한 것이라면, 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의 '레디컬 아트'는 자체적으로 야심차게 기획한 수출용 전시라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흥미롭게도 '레디컬 아트'에 초대한 3작가 모두 지역출신 작가들이다. 청주출신 박기원 작가는 충북대 미술교육과에서 서양화를 졸업해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이미 자타가 인정하는 급진적인 작가이고, 대구출신 박정기 작가는 영남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독일 뮌스터 미대에서 유학하고 작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미술계의 '라이징 아티스트'로 부각하고 있고, 부산출신 안시형은 동의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독특한 시각으로 확장시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중부매일이 새해 홍명섭 관장과 인터뷰했을 때, 홍 관장은 청주시립미술관의 방향을 '지역미술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지역성을 넘어서 지역미술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미술관의 중점 과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레디컬 아트'에 지역출신 작가 3명을 초대한 것은 바로 청주시립미술관의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평론에서 박기원, 박정기, 안시형 작가를 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 간과한 '잃어버린 기억'을 소환한 레디컬한 아티스트로 피력했다. '작품인지 물건인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해체하는 급진적인 작품들이 오창이란 소도시에서 전시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욱이 오창관에는 학예사조차 없는데도 말이다.

-홍 관장은 오창관에 학예사가 없다고 방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오창은 말이 읍이지 청주에서 잘 나가는 동네 중 하나다. 오창은 산업단지가 위치해서인지 인구가 점차 늘고 있고, 젊은이들이 근로자로 적잖이 유입돼 평균연령이 33세라고 한다. 특히 젊은 부부들이 많은 까닭에 오창호수도서관에 민원이 적잖다고 들었다. 젊은 학부모들이 원하는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오창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홍 관장은 오창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본관의 학예사들에게 오창관 기획전을 마련하도록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창관에 학예사·코디네이터 지원해야

 

류병학 미술평론가

류병학 미술평론가는 '레디컬 아트'가 단발적인 이벤트 행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주시가 오창관에 학예사와 코디네이터를 지원해야한다고 말했다. 오창 시민은 이제 어느 곳에도 볼 수 없는 급진적인 공공미술 작품을 3점을 반영구적으로 보유하게 됐다. '레디컬 아트'는 지난 14일 오후 2시에 개막했다. 청주시립미술관은 지난 17일 일반인에게 낯선 '레디컬 아트'를 손쉽게 설명하는 '류병학의 '이것이 레디컬 아트다' 특강도 마련했다.

홍명섭 관장은 2018년 개방형 관장으로 첫 부임한 이후 '시민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홍명섭 관장은 직접 시민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해설사로 나선다. '미술관장과 함께하는 눈높이 전시해설' 프로그램은 전시가 종료되는 3월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오창전시관 입구에서 진행된다.

참여 신청은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홈페이지 교육프로그램 페이지를 통해 사전 접수 진행되며,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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