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아리랑과 박시춘 그리고 표충사
밀양 아리랑과 박시춘 그리고 표충사
  • 중부매일
  • 승인 2019.02.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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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아랑각을 비추네.' 이 노래는 경상도 밀양지방의 명소인 영남루((嶺南樓)와 아랑의 설화를 주제로 한 민요인데, 행사 때마다 가끔씩 들었든 곡이다. 얼마 전, 밀양 영남루에 동생부부 그리고 아내와 같이 여행을 갔더니 누각 입구에 '밀양 아리랑' 노래비가 있었다.

아리랑은 남북한 각 지역과 만주지방까지 퍼져 있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다. 그런데 밀양아리랑은 옛날 밀양 부사에게 아랑(阿娘)이라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젊은 관노가 아랑을 사모해 아랑의 유모를 매수한 뒤 아랑을 영남루로 유인했다. 그는 아랑에게 사랑을 호소했지만 거절당하자 그녀를 죽였고, 밀양의 부녀자들은 아랑의 정절을 흠모하여 노래로 찬미했다고 한다.

누각을 둘러 본 후 입구에 있는 박시춘 작곡가 옛집과 노래 시비를 보았다. 박시춘은 대중가요 작곡가로 20여 년 전 작고하였는데, 1950~60년대 히트곡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야곡' 등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어렵고 힘들던 시절에 마음의 위로를 준 노래들을 많이 작곡했다. 그는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초대회장, 연예인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 대중가요 음악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어서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밀양시 단장면 재약산 기슭에 있는 표충사(表忠寺)를 갔다. 이 사찰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다. 이 절은 1천400여 년 전, 삼국 통일을 기원하고자 원효 대사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로 시작하여,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하였다. 그 후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의 격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는 편액을 받고 표충사로 불렀다. 그런데 이 사찰은 통일신라시대 일연 국사가 1천여 명의 승려를 모아 불법을 일으키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여 이래저래 유명한 절이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동생 부부 그리고 아내와 영남루, 표충사를 여행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들이나 지인, 문학회, 동창회에서 여행을 가도 즐겁지만 형제와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혈연은 뿌리칠 수 없다. 개미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물 세계에서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들을 먼저 챙긴다.

그런데 식물도 친족을 알아보는 연구를 캐나다 맥매스터대의 수잔 더들리 교수가 서양 갯냉이들에서 확인했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의 호로헤 카잘 교수팀은 해바라기가 친족 옆에서 자라면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굽어서 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동물이나 생물, 식물까지 종족의 번식을 위해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데,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간은 가족이나 형제들이 다른 관계보다 우선 일 것이다. 여행을 통하여 아내와 형제들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즐거움을 찾는 것은 큰 보람이고 행복이다. 신 중년을 보내며 생각나는 것은 독자들도 가족, 형제, 친구들에게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아가길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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