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얼마 전 원주 딸네 집에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안식구와 함께 다녀오게 되었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어느새 오전 11시가 거의 다 되었다. 딸은 오신 김에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안식구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내가 주무자로 낮 12시에 회의를 소집한 것이 있어 도저히 점심을 딸네 식구들과 함께 할 형편이 못되어 서둘러 곧장 돌아와야 했다. 나는 안식구를 태우고 부지런히 달려서 약속시간 10분전에 회의장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나는 급한 나머지 안식구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린 아내를 보고 곧장 회의장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모든 회무를 마치고 몇가지 일을 마친 뒤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아내도 직장 일을 마치고 나보다 일찍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과는 달리 몹시 얼굴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안식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당신, 어디 아파요? 아니면 회사에서 무슨 좋지 않는 일이 있었어요?"라고 물으니 하는 수 없이 겨우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 오늘 당신한테 무척 실망 했어요, 어디 그럴 수 가 있어요, 오늘은 날씨도 무척 추운데 비록 시간이 없어서 우리 회사까지는 태워줄 수 가 없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당신, 오늘 수고 많았어, 추운데 어떻게 하지, 시간이 없어서 회사까지 태워 줄수 도 없구, 미안해서, 내가 택시 불러 줄께'라고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내가 알아서 갈 테니 당신은 당신 일이나 잘해요, 이따 집에서 만나요'라고 할 것인데 이건 너무 한 것 아니예요. 아마 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안했을 거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을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안식구한테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좀더 내가 당신을 챙겼어야 했는데, 내가 생각이 너무 짧았어, 나 중심의 생각만 해서 당신 마음을 상하게 했구려, 다시 이런 일 없게 잘할게"하며 마음을 달래 주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에 미안함을 금할 수 가 없었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사람들은 매우 상처받기 쉽고 내면적으로 민감하다. 인간관계에서의 손실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상대방의 가치와 관점, 관심사를 이해하는 것은 대인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이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250명의 전사자 가족에게 친필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밤을 새워가면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또는 부인이나 누나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가며 한통씩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다는 일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자칫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살갑게, 때로는 무관심하게, 또 때로는 아둥바둥 싸우다가도 보듬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가까운 가족이라는 미명아래 상대방에게 무관심하는 태도 아니면 나 중심의 생각으로 이런 것 쯤이야 이해해 주겠지 라고 하는 판단아래 행동을 한다면 상대방은 쉽게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타이밍에 맞추어 지혜롭게 표현해야 한다. 자칫 가깝다라고 하는 가족이라고 하여 일방적인 나중심의 생각으로 행동한다면 관계형성에 금이 갈 수 있다. 그러기에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일수록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존중해 주어야 한다. 어쩌면 남에게 받은 상처의 아픔보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더 아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