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호칭'과 처가살이
'시댁 호칭'과 처가살이
  • 최동일 기자
  • 승인 2019.02.19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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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일 칼럼]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을 채 정리하지도 못한 가운데 설 명절을 맞았다가 이 마저도 순식간에 흘려보내 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세월의 빠름이 새삼스럽기만 한데,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설 명절을 앞두고 가족관계와 관련된 소식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을 위한 건강가정 시행 계획을 추진한다면서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그동안 부계사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이용돼 왔던 가족간 호칭, 특히 결혼한 여성의 남편 집안에 대한 호칭 이른바 '시댁호칭'이 현실에 맞지 않고, 성별에 따라 비대칭적이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지금 쓰고있는 가족호칭에 대한 생각과 대안을 묻고 이를 바탕으로 권고안을 만들어 발표하겠다는 게 여가부의 계획이다. 앞서 지난 연말에는 우리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립국어원에서 한쪽으로 치우진 가족호칭 정비안을 내놓았다. 이를 보면 아내와 남편, 양가의 부모를 구분없이 똑같이 부르고 남편쪽만 높여 부르던 가족들 호칭도 시가(媤家)와 처가(妻家)가 대칭이 되도록 바꾸는 방안이 제시됐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내외간을 중심으로 한 가족 호칭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자 정부부처에서 나선 것이다. 국가에서 이런 문제에 개입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그만큼 논란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일부 가족호칭을 보면 균형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여성이 시집식구를 부를 때 나이와 관계없이 남편 서열에 따라 호칭이 정해져 손위·손아래가 뒤죽박죽이 되기 십상이다. 또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등 일방적으로 존대를 해야하는 반면 남성이 처가식구를 부를 땐 나이가 기준이고 존칭이 들어간 호칭은 별로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차별적인 호칭을 바라보는 시각이 연령별·성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50대 이상은 남녀 모두 지금의 호칭이 '성차별적이지 않다'고 응답했으며 40대 이하에서 남자는 '성차별적이지 않다'가, 여성은 '성차별적이다'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세대를 넘어선 남녀간의 시각차가 주목을 끄는데 앞으로 자칫 사회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최동일 부국장겸 음성·괴산주재
최동일 논설실장.

이같은 차별적 호칭은 결혼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는 예전의 결혼이 남성 중심이었고, 가족구성 또한 이렇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결혼후 시댁에서 사는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볼 정도고, 처가집에 남자가 들어가는 처가살이가 흔한 세상이 됐다. 심지어 육아를 비롯해 살림의 대부분을 처가집, 특히 아내의 어머니인 장모에게 의존하는 신(新) 모계(母系)사회가 도래했다. 더구나 최근 청년들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가 된 상황에서 결혼에 따른 차별적 호칭은 시대착오적인 구태(舊態)일 수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은 나이 든 이들에게는 낯설기만한 지금의 결혼 풍속조차 아직도 여성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흔해진 처가살이는 사실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조선초까지만 해도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게 민속학자들의 얘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처가살이를 바탕으로 외손(外孫)이 번성해 이뤄진 마을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시댁호칭이 전통에서 비롯됐지만 그 이전엔 처가살이가 흉이 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어짜피 후회할 것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얘긴데 젊은이들이 처가살이라고 해도 기죽지 말고 덜 후회하는 삶을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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