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김창식 충북과학고등학교

아들이 며느리와 설날 차례를 지내러 왔다.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명찰이 달린 교복을 입던 중고등학생의 여드름이 돋았던 얼굴, 집에서 떠나 기숙사에 대학교에 다녔던 시절, 군복을 입었던 청년의 기상이 아들의 모습에서 생생하다.

설날 아침상을 물리고 아들의 처갓집으로 서둘러 보냈다. 동생들과 조카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시간이 멎은 것처럼 적막하다. 아들이 결혼하고 분가하면서 남기고 간 흔적들을 찾아본다. 갓난아기부터 결혼식까지의 사진들, 학교에서 받아온 성적표와 상장들, 세월의 더께가 누렇게 내려앉은 갈피에서 한 장의 종이가 발견된다. '아들의 의자'라는 제목으로 내가 써 놓았던 글이 이십여 년 만에 나타났다. 설날 음식 준비에 고단했던 아내가 낮잠을 자고, 이십여 년 전의 내 글을 조용히 읽어본다.

'잠을 놓쳤다. 소주를 곁들여 삼겹살을 과하게 먹고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자정 무렵에 깨어보니 속이 더부룩하니 다시 눕기가 싫어진다. 사위가 죽은 듯 고요하고 초침소리가 어서 불을 끄고 그만 잠에 들라 재촉한다. 괴괴하게 고요해질수록 정신이 외려 또렷해진다. 곤히 잠든 아내 옆에서 부스럭거리기도 민망하다.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잔소리를 듣다 눈물이 그렁해졌던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아침밥상머리의 그 주눅이 남은 듯 가슴이 아프다.

아들의 책상과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책상 앞에 앉아 장난부스러기를 만지작거리는 아들의 뒤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 자리에 앉으면 공부하기가 그렇게 싫은 것일까. 아들이 앉았던 의자에 앉는다.

아들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고 생각의 이마를 친다. 어른인 내가 의자에 앉았는데 책상 면이 목까지 차오른다. 의자와 책상의 부조화를 금방 느끼는 것이다. 초등학교 육학년이 앉았을 땐 오죽했으랴. 의자 또한 아늑하게 몸을 안아주는 느낌이 없다. 몸이 앞으로 미끄러져 내리고 뒤로 젖히면 책상 면을 향하는 목덜미가 부자연스럽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아들의 의자에 앉아 잠든 아들을 바라본다. 책상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아들을 밥상머리에서, 아들의 뒤에서 꾸짖기만 하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혹여 이 녀석이 아빠를 원망해온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코끝으로 석유냄새와 김치냄새가 쌉쌀하게 스친다.

내가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어서야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때 나는 두 시간의 통학거리를 두고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전기가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온 날, 교실에서 큰소리로 자랑을 했더니 친구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책가방을 열면 퀴퀴한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하다가 엎질러진 석유와 반찬이라곤 김치밖에 없던 도시락이 가방 안에서 버무려낸 냄새였다. 나는 그때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다. 수업시간 내내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던 시간이었다. 그때, 못나게도 부모님을 무척이나 원망했던 기억이 새삼 아들의 잠든 얼굴에서 되살아난다. 아들이 초등학교 육학년이 되도록 아들의 의자에 앉아보지 않은 아빠가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깊은 밤이다.'

김창식 충북과학고등학교 수석교사 

아들에게 미안했던 밤이 있었음에도 나는 실천하지 못했다.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마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무조건 나무랐다. 왜 그랬니? 먼저 한마디만 물었어도 아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아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텐데. 또한 아들은 이유를 말하면서 반성하게 되고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는 각오를 할 기회가 되었을 텐데.

설날. 고요한 오후에 나는 장가 간 아들에게 또 한없이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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